지난 주말 충청도 계룡산에 갔다. 나라는 우울한데 하늘은 화창했다. 동학사 못 미쳐 삼봉을 올랐다. 오른쪽부터 장군봉·임금봉·수리봉(修理峰) 밑에 사찰이 있었다. 편액을 보니 '학림사(鶴林寺) 오등선원'이라 새겨져 있었다.
사연이 많은 듯했다. 행정명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는 구전(口傳)이 있다. 이곳은 원래 제석골이었으며 제석사란 절이 있었다.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누구인지 알려면 불교의 우주관인 육도를 살필 필요가 있다. 천상·인간·아수라·지옥·아귀·축생계인데 제석천왕은 천상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 정상 도리천(忉利天)에 살고 있다. 열반하려는 부처님께 간청해 중생을 위한 설법을 49년간 할 수 있도록 한 게 바로 제석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계룡산에서 수도할 때 절을 창건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입으로 전해진 말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는데 또한 기록이 없다. 1986년 대원(大元) 대종사가 중창할 때의 얘기도 신비롭기 그지없다. 대원이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여길 들렀다. 뒤로 계룡(鷄龍)이 날개 펴 하늘로 오르고 왼편에 삼봉이 치솟았으며 앞에서 학(鶴)이 날아드는 천하명당이었다.
그 밤 갑사에서 좌선하는 그에게 노(老)스님이 나타났다. 비몽사몽, 주장자 짚고 앞서가는 노스님이 대원을 데려간 곳이 낮에 본 그 터였다. "여기 도량을 세워 용맹정진하면 많은 도승(道僧)이 배출된다"는 말에 대종사가 속으로 "참선만 해온 내게 무슨 돈이…"라고 생각했다. '뜻이 있으면 소원을 이룬다'는 노스님에게 함자를 묻자 "알아 무엇하겠는가, 자장이라 하네…"라고 답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그 뒤 거짓말처럼 들어선 사찰에서 1995년부터 시민들은 최소 1주일 선(禪)을 경험한다.
조타·항해·침몰·잠수정 같은 용어가 난무하는 시절에 이런 곳도 있구나 했는데 기이한 일이 그때부터 펼쳐졌다. 나무 그늘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데 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내건 연등에 '세월호'란 글귀가 보인 것이다. 한 불자(佛子)가 내건 리본엔 '세월호 피해자와 가족이 고통을 이겨내길…'이란 말이 있었다. 내친김에 대원 대종사를 만난 건 대통령마저 조롱받는 권위 실종 시대에 한마디 위로의 말을 얻고 싶은 심정 때문이었다.
대원 스님은 "세월호에서 처음 구조된 학생의 어머니가 우리 불자(佛子)"라고 했다. 그 어머니는 30년 묵은 간장을 평생 시주했다며 화두를 던졌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소!" 무식한 기자는 왼새끼를 꼴 수밖에 없었다.
"옛날 어느 왕이 난세(亂世)를 맞자 도인(道人)을 불렀소. 중신들과 한참 기다리는데 도인은 꾸벅꾸벅 조는 것이었소. '가르침을 달라는데 왜 졸까', 왕이 묻자 도인이 이랬소. '내가 왜 조는지 그 뜻을 아는가?'"
선승(禪僧)이 평생 찾는 게 참다운 나, 즉 '진아(眞我)'다. 내가 무엇인가를 알면 옆에서 천둥번개가 쳐도, 대포가 불을 뿜어도 초연해진다고 대원 스님은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세월호 사건은 어떤 재해냐"고 물었다.
"풍재(風災), 화재(火災), 수재(水災)가 있지만 모두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인재(人災)입니다. 사람 기운이 잘못되면 자연재해가 그 틈을 뚫고 오지요. 결국 국민 의식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인데 지금 자기 잘못했다는 사람 있소?"
정부의 잘못이다, 당신의 잘못이다, 이러는데 국민 의식이 이 모양인 나라에서 탄생한 정부가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냐는 것이었다. "자기를 안 보고 남만 바라보는 독단적인 편리 도모. 세월호 선장부터 그렇지 않았소?"
비탄에 빠진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덩달아 가라앉은 국민이 힘을 추스를 말을 구하자 대종사는 이렇게 말했다. "희생자들이 비명에 횡사한 건 우리의 업보(業報)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천도(薦度)를 잘해야죠."
"희생자들이 다음에 태어나도 그런 일 당하지 않으려면…. 진정한 천도는 국민들이 수단·방법 안 가리고 싸움질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고통의 바다(苦海)에 빠져 표류하며 침몰하는 걸 아는 겁니다."
대종사는 그러면서 미국에서 겪은 낯부끄러웠던 추억을 꺼냈다. "하버드대학 나온 지성인이 이러더군. 한국에는 1700년 넘는 불교문화의 뿌리, 그중에서도 '선(禪)'이 있는데 한국인은 다 그걸 하고 있느냐고."
그 질문엔 이유가 있었다. "이민자 중 식자층, 무식자층이 있었잖소. 차이는 없어요. 식자층은 국회의사당과 박물관 그릇 닦고 무식자층은 빈민촌 그릇 닦았지. 그런 그들이 만나면 싸워대니 미국인 눈에도 이상했겠지."
"처음엔 하루 1~2시간 앉아 있으면 속에서 천불이 나죠. 잡념도 생기고. 대부분 못 견디고 뛰쳐나온다니까. 내가 그러지. '당신 집에 흉악범이 칼을 들고 들어오면 도망칠래 내쫓을래, 아니면 그 칼 맞고 죽을래. 그럼 할 말이 없겠지. 내가 그래요. '당신에게 떠오른 망상이 도적(盜賊)이다. 지금 나가서 술 한잔 먹고 노는 게 급해, 아니면 도적 퇴치하는 게 급해?' 갈등은 이렇게 푸는 겁니다. 힘들여서요…." 아! 그 순간 눈부신 계룡산 신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