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아니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우주 공간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물소리밖에 나지 않는 절대 평온의 상태. 필리핀 발리카삭섬에서 난생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바닷속을 경험한 순간, 문광기씨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부모 말을 거스른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경제학과에 들어가 졸업하기도 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입사시험에 찰싹 붙은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간호학과에 편입하겠다는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문광기(38)씨는 남자 간호사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다. 발리카삭섬의 평온한 바다는 입사한 직장에 회의를 느끼던 그에게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고 부추겼다. 입사 1년이 채 안 됐을 때였다. 건너편 책상에 앉아 있는 과장을 보니 10년 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부하직원 출근 재촉하고 잔소리 늘어놓으면서 나이 들고 싶지는 않았다. 월급에 매달려 현실과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싶었다. 휴가 때 중국 여행에서 우연히 미국인 간호사 기욤을 만났다. 간호사라고 하면 엉덩이 주사 놓는 장면만 떠올리던 그에게 기욤은 간호사가 얼마나 보람 있고 도전할 만한 일인가를 알려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간호대학 편입 준비를 시작했다. 부모는 물론 펄쩍 뛰었다. 머리 싸매고 드러누운 어머니는 “그럴 거면 차라리 의대를 가라”고 말했다. 손익계산서를 따져 보니 의대는 계산이 안 나왔다. 편입시험에 합격할 자신도 없는 데다 인턴·레지던트…, 갈길이 까마득했다. 반면 간호대는 3년만 공부하면 취업할 수 있으니 투자 대비 효과 최고였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설득했다. 예정됐던 집안 어른들 상견례도 미뤘다. 부산 인제대학교 간호학과 편입시험에 합격한 후 2년여 다니던 대기업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전혀 다른 선택을 좇아 삶의 핸들을 확 꺾은 것이다. 그의 나이 28살 때였다. 28살의 도전과 남자 간호사의 경험을 담은 ‘미스터, 나이팅게일’(김영사)이라는 책을 막 출간한 문광기씨를 지난 4월 9일 만났다.
“엄청 후회했죠.”
간호사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문과 출신이 느닷없이 생화학 기호며 해부학 용어를 달달 외워야 했으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밤을 새며 공부했어요. 이 정도로 공부하면 고시도 합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무리하면 몸에 문제가 생기겠다 싶을 정도로 공부를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올 땐 정말 후회가 막심했습니다. 여학생들이 어찌나 독하게 공부하는지 아무리 해도 따라잡기가 힘들었어요.”
간호학과는 성적이 곧 취업과 직결된다. 고3 수험생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성적경쟁이 치열하다. 02학번으로 간호학과 2학년에 편입할 당시 전체 80명 중 남학생은 그를 포함 6명에 불과했다. 한창 힘들 때 첫 직장에서 다시 오라는 제의가 왔다. 곁에서 새로운 도전을 지켜봐주던 여자친구도 결국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났다. “흔들렸죠. 다시 돌아갈 거면 나오지도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결혼까지 포기하면서 선택한 길인데 끝을 봐야죠. 결국 10위권의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간호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빅3’ 병원은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이다. ‘빅3’ 병원은 전국 간호대학을 대상으로 3학년 성적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을 ‘선채’로 미리 뽑는다. 그도 ‘선채’로 삼성서울병원에 합격했다. 그와 함께 합격한 300명 중 남자는 9명이었다. 마침 암센터가 지어지면서 신규채용이 많았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간호사는 총 1700여명. 그중 남자 간호사는 수술실 비정규직 30여명을 포함해 130명에 이른다. 그가 들어갔을 때보다 남자 비율이 훨씬 늘었지만 업무 영역은 아직도 응급실, 중환자실, 특수파트 위주이다. 그도 첫 시작이 중환자실이었다. 한참 어린 선배 여자 간호사들의 야단도 감수해야 했다. “죽는 줄 알았어요. 생사가 오가는 만큼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매 순간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한계를 절감해야 했습니다. 1년을 꼬박 배우고 나서야 조금 알겠더라고요.”
그는 현재 소화기센터 췌담도내시경팀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다. 남자 간호사로 힘든 일은 없었을까. “간호사여서 힘든 일일 뿐이지 남자여서 힘든 일은 없어요. 단지 여성 중심의 문화이다 보니 성격이 둥글둥글해야 지내기가 수월하죠. 저도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섬세해진 것 같아요. 환자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어요. 처음엔 남자 간호사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주사도 안 맞겠다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는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부터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스킨스쿠버, 지구의 끝인 남극과 북극 여행, 커피 바리스타 도전 등을 포함해 책 쓰기도 그중의 하나였다. 책을 쓰기 위해 인디라이터 연구소를 운영하는 명로진 작가를 찾아가 글쓰기를 배웠다. 그가 멘토로 생각하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이찬우 사무총장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지나간 사람으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말을 해주며 책을 써야 할 이유를 보태주었다. ‘여성의 영역’이라는 편견을 깨고 남자 간호사의 길을 먼저 선택한 사람으로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했다. “남을 도우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이만 한 직업이 없습니다. 간호사의 영역도 병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상 간호사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합니다. 국제보건기구, 보건공무원, 의료기 사업, CRA(신약개발관리), 검시관, 법의간호사, 의료분쟁컨설팅 등 간호사를 기본으로 또 다른 선택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카우치서핑(여행객에서 무료 잠자리를 제공하는 커뮤니티)을 벤치마킹한 블로그 ‘카우치셰어링’을 만들었다. 간호학과 지망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블로그를 통해 심심찮게 도움을 요청한다. 비행기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한 여학생은 부모가 간호학과를 가기를 원해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는 간호사 면허증이 승무원 시험에서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될 거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간호학과를 진학한 여학생은 졸업해서 원하는 대로 승무원이 됐다고 한다. 게다가 간호사 면허증까지 갖고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그는 간호사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교훈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그중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삶의 지혜를 배웠다. “‘후회 없이 한평생 잘 살고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환자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엄청난 재산가였는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떠났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순서가 없더라고요.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꿈이 간호사라는 직업은 아니라고 했다. 간호사를 선택함으로써 봉사하는 삶을 알게 되고, 책을 써서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일을 꿈꿀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자신의 꿈은 진행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