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대량 학살)가 자행됐다. 종족 간 분규로 시작된 내전에서 100일 동안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3백만명의 난민과 40만명의 고아가 발생했으며, 수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이렇게 집단 상실감을 경험한 르완다는 한동안 재기불능 상태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 르완다는 완전히 다른 국가로 탈바꿈했다. 잘 정돈된 수도 키갈리 시내에는 우리 KT가 진출해 국가 기간망이 되는 4G망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르완다는 동아프리카 IT 허브로 급부상 중이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7% 이상 경제성장과 함께, 정부 내 만연한 부정·부패를 청산하여 르완다는 비극의 땅에서 모델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르완다가 단시일 내에 국민 화해와 국가 재건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 전의 역사와 진실에 눈감지 않고, 단죄와 화해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통합과 화해 정책의 바탕이 '키부카(Kwibuka) 정신'이었다. 키부카는 '기억하다'는 뜻이다. 2001년부터 르완다 마을 재판제도인 '가차차(Gacaca)'를 전국 1만2000여개 마을에 설치, 대량학살 가담자 10만명을 재판했다. 마을 주민 앞에서 가해자가 과오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면, 형벌을 감해주고 피해자의 집에서 일하거나 경제적 보상을 허용했다.
키부카와 가차차를 통해, 르완다는 제노사이드의 트라우마를 국가단합과 재건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르완다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가장 건실하게 성장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르완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사업하기 좋은 나라 2위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도 르완다를 공적개발원조(ODA)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하고, ICT, 직업훈련, 새마을운동 등 각종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과 르완다 간 교류도 활발하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2011년 11월 부산 세계개발원조 총회 참석차 방한했으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여러 차례 르완다를 방문한 바 있다.
올해는 르완다 제노사이드 20주년일 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는 르완다의 비극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시리아 내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사태 등이 끔찍한 제노사이드로 악화하지 않도록 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