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얼마 전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결론은 이렇다. '전과자 양산(量産) 방지라는 목표가 상습적 위험 운전자와 사고 유발자를 가려내지 못한 채 오히려 교통사고를 양산하고 있다.' 무슨 소리일까.
교특법의 골자는 '운전자가 인적·물적 사고를 내더라도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종합보험(혹은 공제조합)에 가입했다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것으로 간주해 민·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망·뺑소니·무면허·음주운전 등 11가지만 예외다.
교특법은 한국에만 있다. 그렇다면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이 법은 전두환 정권 초인 1982년 전격 시행됐다. 흥미로운 것은 법무부도, 내무부도, 교통부도 아닌 재무부가 입법을 주도한 점이다. 자동차·보험 산업을 육성하려고 운전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사고는 걱정 마시고 자동차 사시고 보험 드시라'는 얘기다. 당시 검사로 법무부 측 입법 반대 보고서를 만든 정선태 전 법제처 장관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법이지만 그땐 가능했다"고 했다.
'그땐 가능했다'는 말은 '이젠 곤란하다'는 뜻이다. 교특법은 32년 동안 여러 폐해를 낳았다. 교통사고부터 보자. 근래 연간 사망자는 5000여명, 부상자는 경찰 집계 32만여명, 보험사 집계 160만여명에서 답보 상태다. OECD 32개국 가운데 29~30위로 사실상 꼴찌다. 그간의 교통시설 투자, 자동차 성능과 의료 수준 개선은 성과가 있었지만 이런 기술적 대응도 한계에 왔음을 뜻한다.
중대 사고가 아니면 경찰이 관여하지 않고 보험사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만든 우리만의 교특법은 우리만 겪는 부작용을 낳았다. 견인업자 횡포, 정비업체 폭리, 보험 범죄 활개 등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적 안전 불감증과 모럴 해저드, 인명 경시와 배금사상 조장이다. 그 결과는 무한한 사회경제적 소모와 상호 불신으로 인한 피로감이다.
교특법 폐지 요구가 없었을 리 없다. 헌법소원만 세 번 제기됐다. 1997년 심리에선 재판관 9명의 과반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결정 기준(6명)에 미치지 못해 무산됐다. 국회에서도 두 번 개정 움직임이 있었고, 시민단체의 폐지 주장도 거듭되고 있다. 교특법에 대해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조차 '피해자 아닌 운전자 보호에 치우쳤다'며 '제거'를 권하고 있다. 법무부·경찰청·안행부·국토부 등 거의 모든 관련 부처의 거의 모든 관계자가 '악법이 맞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단죄(斷罪)하지 못한 이유는 무얼까. 이들은 "솔직히 국민을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없던 세금을 만들면 조세 저항에 부딪히듯, 처벌하지 않던 것을 처벌하면 반발을 사지 않겠냐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모두 교특법을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놓았다. 이젠 상황이 또 다르다. 사망·부상자가 더는 줄지 않고, 다른 폐해도 개선될 조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 목록에 교특법 개폐(改廢)가 추가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