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그림에서 글 쓰는 법을 배웠어요. 그의 그림은 단순하면서 강렬해요. 방 한구석에 여성 한 명을 그려 넣었을 뿐, 복잡한 것은 다 화폭 밖으로 버렸지요. '더 적을수록 더 많아진다(Less is more)'. 그가 가르쳐준 문체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진주 귀고리 소녀'를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Chevalier·52)를 9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도서전 현장에서 만났다. 신작 장편 '라스트 런어웨이'(아르테)에서도 그는 페르메이르 그림처럼 간결한 문체를 선보였다. 작가는 "다 페르메이르에게 진 글 빚"이라며 "그의 그림처럼 고요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책은 지난달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라스트 런어웨이'는 슈발리에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영국 퀘이커 교도인 아너 브라이트는 1850년 미국 오하이오로 간다. '평등의 원칙에 따라 세워진 땅'이라더니 오하이오는 도망간 노예를 뒤쫓는 노예 사냥꾼으로 득실거리는 곳에 불과하다.

영국 런던도서전에서 만난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내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지리적 또는 정신적으로 아웃사이더”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진주 귀고리 소녀’.

아너의 삶도 마찬가지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일 뿐이었고 정착하기 위해 결혼하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온 작가가 이번 소설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다뤘다. "런던에서 결혼도 하고 30년을 살았지만 나 역시 '아웃사이더'였어요. 대서양 너머로 미국을 들여다보며 아이디어가 생기기를 기다렸지요. 노벨 문학상을 받은 흑인 작가 토니 모리슨의 '19세기 지하철도 운동'에 대한 연설을 듣고 이거다 싶었지요. 나는 오하이오 오벌린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도망친 흑인 노예를 돕는 지하철도 운동이 거기서 시작됐어요."

소설은 '돌아갈 수는 없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아너는 불법을 무릅쓰며 노예가 지하철을 통해 도망칠 수 있도록 돕는다. 슈발리에는 역사에서 글감을 길어올리는 까닭을 묻자 "과거에 대해 쓰면 '현실의 나'를 근심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작가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익숙해지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라스트 런어웨이'에서 아너는 퀼트(quilt)를 즐긴다. 작가는 아너의 캐릭터에 디테일을 부여하기 위해 퀼트를 배웠다. 소설에 강력한 여성 캐릭터가 늘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내게 남성은 낯선 외국인 같다면 여성은 속속들이 알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슈발리에는 30년 전 출판사에서 예술 사전을 편집하는 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글감으로 쓸 자료를 찾는 훈련을 그때 한 셈이다. 슈발리에는 "소설은 아무리 멋진 구상으로 출발하더라도 실제로 하는 것은 결국 지루한 반복 작업"이라면서 "작문과 이야기가 어울리는지 거듭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글쓰기는 편집(writing is editing)'"이라고 정의했다.

내년에는 '오셀로'를 현대적으로 개작할 예정이다. "오셀로라는 아웃사이더가 그 다름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라서 매혹적"이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