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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에바 일루즈 지음|박형신·권오헌 옮김|이학사|584쪽|3만5000원

'사랑'만큼 진부한 주제도 없지만, 사랑만큼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히는 스토커도 없다. 고령화 시대는 사랑의 수명까지도 연장시켰다. 더 이상 20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60~70대 황혼에 접어든 남녀도 제2의 사랑을 펼쳐보겠노라 꽃단장을 한다. 대중 미디어의 마력 탓이기도 하다. 로맨스 드라마의 상상력 수위가 나날이 높아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들장미 소녀 캔디'의 테리우스는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재벌 2세를 거쳐, '별에서 온 그대'의 초능력 외계인으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창출한다. 판타지인 줄 알면서도 그런 유토피아에 진입할 수 없는 청춘들은 절망한다. 재벌은커녕 연봉 3000만원 회사원 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이니 아예 '모태 솔로'를 외치거나 가벼운 '썸 타기'로 연명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목숨 건 사랑을 하기엔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큰 탓이다. '사랑한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따위의 고백은 골동품 된 지 오래. 거룩하고 숭고한 영역에 존재했던 사랑조차 효율과 생산성을 저울질하는 영역으로 들어온 셈이다.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는 감정사회학자, 사랑의 사회학자로 유명한 에바 일루즈의 첫 저작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 '감정자본주의' 같은 일루즈 대표작들의 원천이 된 책으로, 2000년 미국 사회학회 감정사회학 분야 최우수 도서상을 받았다.

책은, 사랑이란 감정은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신(神)의 선물이 아니라 사회관계들로 형성된다는 것, 우리가 숭배하는 사랑이 그렇게 낭만적이고 신성한 마법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눈먼 사랑'이란 표현처럼 지극히 탈계급적인 것으로 인식돼온 '로맨스'라는 현상에 일루즈는 '계급'을 들이댔다. 사랑의 기쁨과 아픔이라는 감정을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에서 찾아내는 작업이다.

실제로 남녀 50명을 심층 인터뷰 해 서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경험한 로맨스를 범주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노동계급보다 더 많은 교육과 문화자본을 가진 중간계급이 낭만적 감정을 확보할 여유가 더 많고, 소비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사랑의 이미지에 접근하기도 쉽다"고 설명한다. 소득, 여가자원, 교육의 차이가 사랑의 정치경제학이 작동하는 주요인이며, 사랑과 로맨스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이미지 역시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각본 속에서 불평등하게 소비된다는 얘기다.

‘이 설레는 느낌, 진짜 사랑일까?’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마음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자유 시장경제 모델과 닮았다고 주장한다.

일루즈는 각종 소설과 영화, 광고, 대중음악, 자기계발서 등을 토대로 현대인의 사랑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상품의 낭만화' '로맨스의 상품화'가 오늘날 우리가 사랑이라고 일컫는 감정의 본질이라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인간 삶에서 유일한 안식처이자 희망이 되어야 할 사랑이 이윤을 추구하는 상품으로 전락한 건, 20세기 초부터 급격히 발달한 광고 시장 때문이다. 사랑을 테마로 각종 상품을 포장하고 선전할 뿐 아니라 로맨스를 부추기는 여가 산업까지 덩달아 발전하면서 사랑이 자본주의 상품체제의 주요 원천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달빛 비치는 해변에서의 산책은 완벽한 로맨스의 순간인가? 아니면 단지 옥외광고판과 영화에 나오는 이상의 시뮬레이션일 뿐인가?"

마음이나 약속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자유시장 경제모델과 닮아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너무 삭막하다. 사랑이라 확신한 감정이 실은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하다. 다만 사랑의 고통과 실패가 오롯이 개인 탓이 아니라 제도의 모순에 의해 강제된 것일 수 있다는 일루즈의 주장은 지금 이 순간 사랑을 잃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겠다. 분량이 많고 난해한 게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