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 한 권이 지난달 26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주간 종합 베스트 1위에 올랐다. 2003년 9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문학동네).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어톤먼트'(2008) 원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판매량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를 출판계에서는 '빨책 효과'로 분석한다. '빨책'이란 영화평론가 이동진씨가 진행하는 책 소개 팟캐스트 '빨간 책방'의 준말. 책 판매는 지난달 19일 '빨간 책방'에 소개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알라딘 관계자는 "하루 평균 2권 팔리던 책이 방송 예고 후 하루에 8권 팔리더니, 19일 1부 방송이 업로드되면서 하루 평균 50권씩 나갔다. 24일 문학동네 반값 할인 이벤트가 시작되자 일평균 270권이 팔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서점 예스24 관계자도 "'속죄'는 '빨책'에 언급되기 전 2주간 약 30권 판매됐지만 언급 후 2주간 약 1300권이 팔리면서 판매량이 43배가량 뛰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측은 "방송 전 1년간 750부 출고됐는데 방송 후 12일간 2900부 출고됐다"고 밝혔다.
출판사와 서점이 팟캐스트를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요즘 출판계 트렌드. 그 선두에 위즈덤하우스가 운영하는 '빨간 책방'이 있다. 복수의 출판계 관계자는 "'빨책'의 성공 이후 여기저기서 팟캐스트를 많이 내놓지만 '빨책'의 아성을 능가하긴 힘들다. 출판계에서는 일단 '빨책'에 소개되면 재판을 찍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5월 시작한 '빨간 책방'은 지난해 12월까지 다운로드 수가 1600만건에 달한다. 매회 1시간 40분~2시간 10분 동안 이동진씨와 소설가 김중혁씨가 책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구간(舊刊) 중 명저를 소개해 되살리는 것이 '빨책'의 특징.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데이비드 실즈의 에세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문학동네), 테렌스 데프레의 연구서 '생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서해문집), 과학 저널리스트 레토 슈나이더의 '매드 사이언스북'(뿌리와 이파리) 등이 '빨책 효과'를 톡톡히 본 대표적인 책이다.
알라딘에 따르면 방송 전 월 80권 팔리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지난해 5월 방송 후 월 1200권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방송 전 월 7권 팔렸지만 작년 11월 방송 직후엔 월 620권 팔렸으며, 현재 월 250권씩 판매된다. 월 1~2권 팔리던 '매드 사이언스북'은 방송에 소개된 작년 7월엔 100권, 다음 달엔 200권 팔렸으며 요즘은 월 40권씩 팔린다.
비결은 뭘까.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일단 진행자의 '마력'이다. 이동진씨는 영화평론을 하면서 출판 시장의 주고객인 20~30대 여성들을 팬으로 확보했다. 이들의 팬덤이 책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동진씨는 전화 통화에서 "책 선정을 100% 내가 한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데도 출판사의 개입이 없으니 청취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청취자들은 책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귀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고 말한다. '빨책' 청취자 유재빈(36·서울대 강사)씨는 "이동진·김중혁 두 사람이 권위에 기대기보다는 수다를 떨 듯 솔직하게 책 이야기를 하면서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