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와 함께 주고받은 명함. 그의 명함에는 본인이 작곡한 노래의 제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제목만 들어도 아는 히트곡이다. 가수 혹은 작곡가가 히트곡 하나 있으면 삼대가 배부르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창작자의 위상이 높아졌는데, 이런 논리라면 그에게는 두둑한 저작권료가 쌓인 통장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들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런데 그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웃음) 제가 음반 실패 경험도 있는 데다 겁 없이 음반 제작에 뛰어들어서 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정해져 있나봐요."

경옥고 매니저부터 음반 제작자, 작곡가까지…

귀에 착 감기는 노래들을 수없이 작곡한 주인공이니, 작곡가로서 천재적이고 대단한 행보를 걸어왔나 호기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의 행보에는 조금 반전이 있다. 그는 정식으로 작곡을 배운 적이 없다. 물론 음악과 동떨어진 시간을 보낸 적도 거의 없다. 음악에 소질을 보이던 그는 해군 홍보단에서 복무했던 시간 동안 많은 영감을 받았고, 감수성도 많이 키우며 음악과의 인연을 쌓았다.

"대학교 때 가요제에 입상한 경험이 있어서 해군 홍보단에 들어갔어요. 김건모, 추가열, 김용만 등이 내무반 동료였어요. 그때 바다 위에서 음악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감수성도 많이 키웠고요."

처음부터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한 인생이 시작된 건 아니다. 시행착오가 많은 인생이었다. 해군 홍보단을 나와서 가수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가수가 되고, 매니저가 되고, 음반 제작자도 됐다. 곡 작업은 꾸준하게 했다.

먼저 가수 이야기부터 하자면, 1988년 즈음 그는 본인의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냈다. 전곡을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 음악적인 재능이 남달라 내심 기대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후 2집도 냈으나 역시 크게 실패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는 유재하 가요제 출신의 가수 정혜선 씨예요. 아내를 위해서 음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매니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가수 이주원부터 배우 장동건, 방송인 김승현 등의 매니저 생활을 거쳤다. 그리고 가수 박진영을 만나 데뷔부터 6년 반의 시간을 함께했다.

"그때 제 별명이 '경옥고'였어요. 새벽 6시 30분에 방송국에 출근해서 피디들에게 경옥고를 돌렸거든요. 그 시절 사이다가 300원이었고, 경옥고는 1500원이었으니 파격적인 로비였죠. 엄청나게 비쌌지만 피디들이 좋아할 거라고 믿었어요."

경옥고 살 돈이 부족해서 남에게 빌릴 정도로 고단한 시절이었지만, 성실함은 통했다. 박진영은 크게 성공했고 흐릿하기만 하던 그의 인생에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매니지먼트 사업에 자신감이 생겼다. 제리 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가수들의 앨범 제작에 뛰어들었다. 잊고 지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나왔던 것이다.

"가수 김사랑의 앨범을 제작했는데, 실패했어요. 이후 마골피 등 음반 제작에도 투자를 했는데 역시 실패했고요. 운이 없기도 했지만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 그때 미술 큐레이터가 되기도 했고, 시도 많이 썼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지금의 그가 만들어졌다. 가수 매니저 시절에는 퍼포먼스와 무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배웠고 미술계 쪽 일을 하면서는 수많은 예술가를 만나서 사상과 철학, 심리 등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식견을 넓히게 됐다.

운명적인 노래 '어머나'

많은 히트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조금은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과 실패로 깨달은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좋은 곡은 운명적으로 온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다양한 경험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온다고 믿어요. '어머나'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곡이 자식처럼 각별하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이 가는 곡은 '어머나'다.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머나'는 장윤정이 부르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주현미, 송대관, 김혜연, 엄정화 등 7명의 가수에게 곡이 갔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8번째 제안이 들어간 사람이 장윤정이었다.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장윤정 씨와 소속사 대표를 만나는데, 얼굴을 보는 순간 주인을 만났구나 싶더라고요. 노래를 들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곡을 줬습니다."

남들은 평생에 한 곡도 만들기 어렵다는 히트곡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더 좋은 곡을 만들고 싶은 것은 창작자로서의 당연한 태도다. 그는 여전히 곡 작업을 하면서 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그는 명함에 새로운 이름을 더하게 됐다. 제22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국내에서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음악 저작물을 위한 집중관리단체다. 협회라는 이름이 붙은 기관의 특성상 조금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곳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그는 본인의 취임을 계기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점점 중요해지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싶어요. 모든 것을 제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창작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투명하게 운영할 생각입니다."

40대 젊은 회장의 포부가 대단하다.

지난 2002년 서태지는 음악저작권협회가 자신의 노래 '컴백홈'을 패러디한 가수의 음반을 승인하자 이에 반발해서 협회에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음반에 대한 협회의 신탁관리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음저협이 가처분 결정 이후에도 음원 사용료를 징수해서 저작권사용료반환소송을 내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는 서태지 컴퍼니 측 사람을 만나서 그동안 서태지가 뮤지션으로 자존심에 상처받은 것에 사과를 하고 이를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음저협의 기조가 그로 인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저작권료 1위는 누구?

 공식적으로는 저작권료 분배에 따른 순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징수된 저작권료는 주무관청으로 승인받은 분배규정에 의거 매체별로 정해진 분배기준에 따라 협회의 전산 시스템에 의해 분배되며, 그 데이터가 축적된다. 
한 방송을 통해 공개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저작권료 수입 랭킹은 다음과 같다.

1위 박진영(약 12억원) / 본인 곡, 2pm, 미쓰에이 등
2위 조영수(약 10억원) / SG워너비, 씨야, 김종국 등
3위 테디(약 9억원) / 2NE1, 빅뱅 등
4위 유영진(약 9억원) / 소녀시대, 샤이니 등
5위 지드래곤(약 7억9천만원) /
본인 곡, 빅뱅 등
(2012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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