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임승미 기자] 반듯하면서 올곧게 생긴 이 남자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춘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다니. 배우 박정민은 영화 '들개'(감독 김정훈)에서 자유분방하다 못해 겁을 상실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냈다.
박정민이라는 이름은 아직 낯설지만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그는 영화 '파수꾼'과 '주먹이 운다'로 얼굴을 알렸다. '파수꾼'에서는 이제훈의 친구로 '주먹이 운다'에서는 황정민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이쯤 되면 박정민이라는 이름을 몰랐던 사람들도 영화를 통해 본 그의 얼굴이 기억날지 모르겠다. 현재 그는 다양한 연기로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다지는 중이다.
이번에 그는 영화 '들개'에서 효민 역으로 열연했다. 박정민은 효민을 미친놈에 가깝다며 만약 현실에 존재한다면 사회부적응자로 교도소에 있을 거 같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해할 수 없는 인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캐릭터를 연기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찍을 때는 사실 긴가 민가 했었어요. 그동안 했던 연기랑 조금 다르고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랐었어요. 사실 열심히 안 했는데요.(웃음) 나태해서 열심히 안 했다기 보다는 캐릭터 상 열심히 하면 안될 거 같은 사람이라 집에서 크게 준비한 것도 없이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충실하게 했어요. 그래서 다 찍고 나서 걱정이 됐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잘나와서 다행이에요."
연기를 열심히 안 했다니.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박정민의 자연스러운 표현법이야 말로 효민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박정민은 영화 촬영 중 사람들과 상의되지 않은 행동을 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효민이 갖고 잇는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그는 순간 생각나는 행동과 대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효민을 연기할 때 사실 재미있었어요. 힘들었던 건 시나리오를 받고 이 인물에게 접근하는 과정, 공부할 때가 힘들었고요. 그런데 현장에서 오히려 여건이 마련이 되고 연기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니까 통쾌하더라고요.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차도 부시고 물건도 훔치고 이것저것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관객들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통쾌해 하셨으면 좋겠어요."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공부까지 잘하는 박정민은 진정한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였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었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연기를 하기 위해 과감히 포기, 한국종합예술학교로 다시 입학하게 됐다고. 똑똑한데 꿈을 위해 도전하는 과감함까지 대화를 나눌 수록 그의 솔직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엄친아라는 수식어를 부담스러워했다.
"사람들이 엄친아라고 안 해줬으면 해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스피드 스케이팅도 잘 타는 사람이랑 타면 성적이 올라가듯이 고등학교가 좋은 학교라 공부는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를 하게 된 거예요. 솔직히 공부 억지로 했어요(웃음)."
억지로 공부를 해서 고려대학교에 입학하다니. 부러운 말이었지만 그는 사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을 했었지만 떨어져서 고려대학교를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꿈을 위해 다시 한번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도전 하게 됐다고.
"원래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골이라 연기를 배울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영화를 공부해서 내 영화에 내가 출연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지원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군대를 갔다 와서 연기과로 전과했죠."
연기에 대한 박정민의 욕심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연기에 대해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일이라며 하고 싶은 일이니까 재미있다고 말했다. 사실 본인은 꼼꼼하고 실수를 잘 안 하는 성격이라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공무원이 잘 어울렸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박정민은 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을 반짝이는 천상 배우였다. 그는 영화, 드라마 외에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라 연기를 다지는 중이다.
"연기를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기본적인 신체훈련이 안 돼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어요. 연극은 배우의 기본적인 훈련을 하게 해주거든요. 또 연극이 하고 싶다는 맹목적인 로망도 있었고요. 게임을 하면서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연극을 하고 나서 극장 문을 나올 때 스스로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아요."
이렇게 욕심이 많은 배우가 막상 해보고 싶은 역할을 물으니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아직은 시나리오를 선택할 입장도 아니라고. 좋은 영화에 한 부분이 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배우다. 또 이야기가 제대로 꾸며져 있으면 캐릭터는 저절로 나오는 거라는 소신도 밝혔다. 해보고 싶은 역할은 없지만 꼭 하고 싶은 영화 장르는 있다고.
"스포츠 영화나 군무가 나오는 영화는 꼭 해보고 싶어요. 스포츠 영화는 무조건 꼭 보거든요. 예전에 '주먹이 운다' 찍을 때 복싱을 했었는데요. 힘들었지만 심장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군무 나오는 영화도 좋아해요. 일본영화 '워터보이즈'나 '스윙걸즈' 같은 영화들이요. 비록 춤은 못 추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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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