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가 이철희는 스스로 “김대중 편도, 노무현 편도, 문재인 편도 아닌 민주주의의 편”이라고 말한다. 그게 이철희 소장이 정치평론가로서 중심을 잡고자 하는 ‘스탠스(stance)’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니 편인지 네 편인지’ 확실히 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진보 진영의 ‘가장 잘나가는’ 정치평론가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을 만났다.
◆ 어쨌든, 정치평론가
이철희 소장은 정치평론가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송인이나 정치인은 더더욱 아니다. 조금 유명해진, 그래서 더 호감이 가는 정치평론가랄까. 그의 현 위치는 무엇일까.
1년 전에 비해 방송 출연 횟수가 부쩍 늘었어요.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죠?
연예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뭐 방송인, 연예인, 정치평론가. 심지어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연예인이다, 방송인이다, 이런 생각은 잘 안 하고 살거든요. 특히 연예인 콘셉트는 전혀 없고요. 객관적으로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까 조금 의식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정치평론가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정치가 평론의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고요. 보통 평론가라고 쓰니까 할 수 없이 쓰는데, 그 단어를 썩 좋아하진 않아요.
단어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정체성은 정치평론가인 걸로?
결론은 그렇죠. 사실 정치평론은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어요. 정치평론 행위가 곧 정치 개입의 행위가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 누구로부터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고 봐요. 특히 내가 지지하거나 좋아하는 쪽으로부터는 엄격한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의 콘셉트는 쉽게 말해 좌우 진영의 쌈닭들을 붙여놓은 거잖아요.
기본 컬러는 그렇죠. 보수, 진보로 되어 있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진보 진영을 비판할 때도 가차 없이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 쪽은 열심히 비판하고 한 쪽은 열심히 변호하는 건 그야말로 꼴불견이거든요. 방송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는 굉장히 못마땅해요. 왜냐면 실제로 그런 모습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거든. 난 그러는 게 굉장히 싫더라고. 나는 저러고 싶진 않아요. 물론 나도 기본 성향은 있어요. 어떻게 성향이 없을 수 있겠어요. 내 가치 정향이나 이념적으로 지지하는 건 있지만, 그것 때문에 지정 논리에 휩싸이고 싶지는 않은 거죠. 틀린 논리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진영에서 주장하는 논리니까 편들어주자? 저는 이런 걸 제일 싫어합니다. 절대 그런 덫에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정 논리에 빠지지 않기가 어려워요.
쉽지 않죠. 물론 지정 논리를 대변하면 좋은 점도 있어요. 확실한 아군이 생기잖아요. 반대로 지정 논리에 빠지지 않으면 양쪽에서 다 욕먹기 쉽죠. 저놈은 따지고 보면 저쪽인데 아군 같다, 저놈은 분명히 이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양쪽에서 비판받을 가능성이 커요. 근데 그런 위험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정치인가요? 사실 정치인이기도 했고요.
정치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권에 있었죠. 저는 세상을 조금은 바꿔보고 싶어요. 1밀리미터라도 앞으로 나아가게끔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사실 문화적인 면에서는 보수적이에요.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그런 것도 있고요. 근데 정치적으로는 진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얘기는, 한국 사회는 지켜야 할 것도 많지만 바꿔야 할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바꾸는 데에 더 관심이 가요. 그러니까 진보 성향이 있는 거죠. 지키기보다는 바꾸자는 거니까. 근데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봐요. 내가 직접 정치에 뛰어들 거냐? 한때는 그런 정치 열망을 갖고 살았죠. 근데 방송 하면서는 그 열망을 밀어놨죠. 그것(정치)과 이걸(방송) 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방송 할 때만큼은 일체 생각하지 말자, 하는 거예요. 유보시켜 놓았어요. 지금 누가 나더러 정치를 하라고 하면 안 할 거예요. 그러나 2년 뒤에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아직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정답이죠.
2년 뒤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말하는 건가요?
총선, 대선이 있잖아요. 제 필생의 꿈이라 그럴까? 제 롤 모델이 장량, 제갈공명 같은 사람들이에요. 요즘 말로 하면 전략가.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 친구는 전략가다'라는 말을 많이 해요. 제 명함에도 보면 샤트슈나이더(전 미국정치학회 회장)의 논문에 나오는 한 대목이 있어요. '정치의 심장은 전략이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죠. 그 정도로 전략가 지향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 한마디로 그런 전략가로서 총선을 이기게 하고 싶어요. 국가권력의 향방이 좌우되는 총선, 대선이라는 큰 선거에 전략가로서 기여하고 승패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죠. 그런 열망을 갖고 있었고요. 2년 뒤 총선, 대선 때 내가 품었던 열망을 꺼내들 것인지 말 것인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려고요.
정치권에 사표 내고 평론가를 시작한 계기가 뭔가요?
정치평론가 고성국 선배가 대학 선배예요. 그분이 2012년 3, 4월쯤 본인이 하는 방송에 패널로 같이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했죠. 근데 그때 타이밍도 묘하게 대선이 다가오는 시점이었고, 종편에서는 한창 정치 뉴스 프로그램이 많아질 때였어요. 그래서 정치평론 시장이 확 넓어졌어요. 수요가 많아진 거죠. 여기저기 불려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하루 종일 방송을 하는 사람이 돼 있는 거예요.(웃음)
평론가로서 방송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2012년에도 어느 한 쪽 편들기 싫다는 생각은 똑같이 했어요. 그런데 대선이 다가오니까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선거라는 게 워낙 양쪽(진영)에서 당기는 구심력이 강하다 보니까 이게 막 허물어져요. 그래서 (야당을) 편들어주고 이런 게 있었다면, 지금은 선거가 다가와도 어느 쪽도 편들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죠. 그리고 그전에는 방송국에서 부르면 갔는데, 이제는 제 필요에 의해서 선택하려고 해요. 2012년에는 상황적 요건에 갑자기 떠밀려서 했다면 2013년부터는 주체적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고 봐야죠. 그런 게 차이라면 차이죠.
왜 (방송 패널로) 안 나가는 건가요?
일단 물리적으로 힘들기도 하고요. 여기저기서 인도하는 대로 끌려다니면서 말하는 것도 싫더라고요. 너무 시장에 휘둘리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나도 정제된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방송 방향에 개입할 수 있는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자는 거죠. 아직은 정치평론가들이 방송사에서 부르면 대체로 쫓아가거든요. 1~2시간 전에 부르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게 싫어서 그렇게는 안 하려고요. 근데 다행히 고정으로 하는 방송이 생겨서 그때그때 쫓아다니는 신세는 아니죠. 보따리 장사는 아니에요. (그 신세는) 면한 거죠.(웃음)
돈도 많이 벌고요.
그죠. 시사 프로에 나가면 돈 얼마 안 줘요. 아마 들으시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적게 줘요. 근데 예능은 0 하나가 더 많아요. 당장 셈을 해봐도 이쪽(예능)이 (일은) 적게 하고 훨씬 많이 버는 거예요. 웃기더라고.(웃음)
더 큰 유혹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라든지요.
몇 번 해봤어요. 이른바 '떼 토크'도 해봤고요. 간간이 나갈 생각은 있어요. 근데 정치평론가가 아닌 방송인이 돼서 쫓아다니고 싶진 않아요. 제가 잘하는 건 평론이지 나가서 사람들 웃기는 게 아니거든요. 소질하고도 안 맞고요. 제 능력 밖의 일을 억지로 끌고 나가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요. 방송을 하면 돈도 훨씬 잘 벌죠. 그래도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떼돈을 벌겠어요? 빌딩 살 것도 아닌데.(웃음) 적당히 있는 빚 갚아가면서 그렇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방송이 재미는 있잖아요.
재밌죠. 조금밖에 안 해본 놈이 이런 얘기 하니까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방송이라는 게 사람을 소진시켜요. 재충전이 안 돼요. 잘나가는 스타들도 공백기를 갖잖아요. 결국 그 기간 동안 재충전을 한다는 건데, 방송 특성이 그런 것 같아요. 방송을 하면서 공부를 더 하거나 사색을 하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방송이 좋은 점도 있지만 굉장히 힘들어요. 몸을 상하게 하고 소진시키고 (에너지를) 뽑아간다, 이런 느낌도 있어요.
으로 가장 비교를 많이 당하는 사람이 강용석 씨죠. 꿈이 정말 대통령이라던데, 어떻게 보십니까?
꿈은 자유다, 그랬죠.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 친구라고 해서 안 되라는 법은 없어요. 더 열심히 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주면 되는 거죠. 그런 것까지 비아냥거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 친구는 자기 입으로 정치가 하고 싶고, 하겠다고 얘기해요. 그럼 정치를 해야죠. 다만 지금 강용석이라는 사람에 대통령이라는 그림이 가능하냐, 그렇게 물었을 땐 저는 좀 어렵다고 봐요.
옆에서 본 강용석 씨의 장점은 뭔가요?
이 친구의 장점은 열심히 하는 거예요. 굉장히 열심히 해요. 인생을 열심히 살더라고. 그리고 집요함이 있어요. 바닥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났잖아요. 아무도 (그렇게) 못 해요. 멘탈이 강철이에요. 정치적으로 다시 부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봐요. 그래서 정치를 한다면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잘할 거라고 봐요.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있잖아요? 장점을 잘 살려나가면 상당히 긍정적인, 아주 괜찮은 정치인이 될 수 있는데 본인도 딜레마겠죠. 방송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선뜻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간다? 쉬운 선택은 아닐 거예요. 자기 선택이죠. 그래도 그 친구는 정치에 열망이 커서 (다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거예요.
프로그램 설정이 그렇기도 하지만, 자주 대립각을 세우다 보면 서로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어떤가요?
(강용석씨와 저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죠. 주장이 다르다는 것과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 같아요. 예를 들면 우파 논객 중에서도 저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굉장히 친하게 지내거든요. 대기실에 가면 형, 동생 하면서 정말 격의 없게 해요. 근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 같아요. 강용석 변호사 같은 경우는 저와 스타일이 굉장히 달라요. 그래도 방송 같이한 지 한 1년 돼서 서로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에요. 사석에서 형님, 동생 하면서 살갑게 술 먹으러 다니지는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정서적으로 좀 친해졌죠. 그러나 스타일은 많이 달라요. 달라야 또 재밌죠.
김구라 씨는 어떻습니까. 방송에서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도 그런가요?
김구라 씨 방송 하는 거 보면 놀랍죠. 시사 문제를 그 정도로 쉽게 이해해서 재밌게 풀어내는 능력은 거의 독보적이라고 생각해요. 김구라 씨 외에는 남희석 씨 정도가 또 다른 컬러로 가능할진 몰라도,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김구라 씨가 유일하잖아요. 연예인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 시사를 다루겠다는 것도 용기고요. 함부로 못 덤비는 영역인 데다 잘못하면 휩쓸리니까요. 근데 굉장히 잘해요. 함부로 중재하려고도 하지 않고, 누구 편들려고도 하지 않고. 아주 나이스한 방송을 해요.
◆ 일인자보다는 전략가가 세상을 바꾼다
제갈공명이 아니었으면 유비는 적벽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장량이 없었더라면 유방은 항우를 제압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참모는 역할은 중요하다. 이철희 소장도 그런 참모가 되고 싶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어요. 원래 정치에 꿈이 있었나요?
처음 재수할 때는 한 번도 정치외교학과를 생각 안 해봤어요. 그때만 해도 경영학과나 법학과, 신방과를 많이 갔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 아웅산 테러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걸 보고 논리적으로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저런 꼴을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힘을 키우려면 외교가 중요하구나. 외무고시를 봐서 외교관이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정치외교학과를 갔는데, 들어간 순간부터 외교 쪽은 사라져버렸고 정치 쪽으로 관심이 기울었어요. 그때만 해도 '정치' 하면 운동, 무브먼트(movement)였거든요. 데모로 사회를 바꿔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외교는 버리고 정치 쪽으로 옮겨왔죠. 대학을 졸업할 때도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 쪽으로 왔고요.
대학 다닐 때 어울렸던 동기, 선후배들이 지금도 정치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나요?
많지 않아요. 지금 정치권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돼요. 대학 동기만 하더라도 다섯 명도 채 안 될 거예요. 나머지는 그냥 평범한 직장 생활 하며 자기 삶 살고 있죠.
그 다섯 명 중 한 명이네요.
아까 말했듯이 세상을 좀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수단이 없는 거예요. 정치를 활용해서 뭔가를 좀 하려고 정치권에 발 들였던 거지, 내가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지금도 별로 없고요. 필요에 의해서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예를 들면 대선 때 캠프에서 전략을 맡는 거죠. 근데 국회의원 자체가 매력적이라서 3선, 4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뒤에서 전략을 짜는 쪽이라는 건가요?
저는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수석 셋 중 하나 고르라면 청와대 수석을 골라요. 장관은 전체를 끌고 가는 리더십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그런 리더십의 자질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세 개 중 누구의 참모(역에 어울리죠). 예를 들면 장량, 제갈공명 같은 최고의 참모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장량을 꼽은 이유는 뭔가요?
일단 왕조를 만들어냈잖아요. 승자예요. 또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거든요. 유방을 황제로 만들어놓고는 잠적해버렸잖아요. 그래서 전설이 됐어요. 그런 담백함을 배우려고 하는 거죠. 담대하고 과감한 전략들도 좋았고요. 자잘한 데 신경 쓰면 큰 그림이 안 그려지거든요. 그런 요인에서 장량을 좋아하죠.
정치평론 하려면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접해야 할 텐데, 지인들과의 교류만을 통해서 하는 건가요?
우선 그 업계에 있었으니까 업계 돌아가는 건 좀 알아요. 또 하나는, 이제 좀 알려지니까 정치인들이 먼저 보자고 해요. 이래저래 만나다 보면 그들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알게 되는 정보가 있어요. 또, 궁금할 땐 전화로 물어보죠. 정보를 달라고는 안 하지만 분위기를 봐요. 일종의 취재 같은 것도 하면서 현장감 있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너무 캐묻기 시작하면 기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단기 호흡에 빠지려고 하지는 않아요. 작은 사건에 대해서는 뒷이야기 몰라도 얼마든지 분석할 수 있거든요. 너무 알면 분석이 또 잘 안 돼요. 속사정을 몰라도 유권자의 입장에서 비춰지는 게 있으면 그 관점에서 충실하게 분석하려고 하죠.
분석도 하지만 예상도 하잖아요. 예를 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느 당이 이길 것 같다든지요. 그런 예상들이 어느 정도 맞나요?
잘 안 맞아요.
워낙 변수들이 많아서인가요?
저는 맞추는 것 자체를 잘 못하겠고, 꼭 맞춰야 된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평론은 예측이 아니거든요. 정치라는 건 A와 B의 상호 교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예측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대체로 잘 안 맞더라고요.(웃음) 어쩌면 해서는 안 될 얘기라고 봐요.
대중들 사이에서 '정치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이 오갑니다. 언제쯤 큰 틀에서 변화가 올 것 같나요?
제가 이해하는 정치의 특성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 예요. 두 번째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전자는 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외부의 충격이 세게 가해지지 않는 한,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봐요. 근데 저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봐요.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와 유권자가 원하는 정치의 간극이 너무 크거든요.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어요. 대중이 완전히 정치를 포기하든지 정치가 완전히 달라지든지 둘 중 하나예요. 저는 후자일 거라고 봐요. 다수의 사람이 정치를 통해 뭔가 도움을 못 받고 있다면,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어 있거든요. 국민소득 2만 불에 민주화 된 지 근 30년이 된 사회가 이렇게 무능한 정치를 (계속) 용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삶의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 건 결국 정치의 문제라는 거죠?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줘야죠. 예외적인 나라가 있긴 하지만, 소득 2만에서 3만, 4만으로 가는 건 정치가 좌우한다고 봐요. 우리나라가 지금부터 선진국이 되고 아니고는 그야말로 정치에 달려 있다고 봐요. 양극화의 문제, 빈곤의 문제, 불공정성의 문제, 이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중이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게 될 거라고요. 저는 틀림없이 달라질 거라고 봐요.
◆ 예측은 무의미, 내 말이 틀릴 수도 있다
이 사회가 하나의 목표를 이루려면 타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타협은 상대가 맞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자세에서 시작된다. 이철희 소장 역시 오늘도 스스로 주문을 왼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남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다'.
소장님의 강점 중 하나가 보수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발언입니다. 이런 항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말씀하신 그런 칭찬을 제일 좋아합니다. 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간에 있는 사람이 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 맞아'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게 제가 원하는 길이거든요. 근데 이게 좌우로부터 욕을 먹을 수 있어요. 한 쪽은 위장이다, 한 쪽은 변절이다 그래요. 반대로 좋게 보면 보수 쪽에서는 '저 친구는 합리적인 주장을 하니까 들어볼 만해'라고 하고, 진보에서는 '저 친구 하는 얘기는 되새겨봐야 돼'라고 해요. 적도 못 만들고 마니아도 못 만드는 건 죽도 밥도 아닐 수 있는데, 그래도 저는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해요.
중간을 지키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용기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기죽지 말자. 내 주장, 내 판단이 맞다는 확신으로 버티자. 만약 두세 발만 후퇴하잖아요? 그럼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이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안 물러서려고 노력하죠. 그게 내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없으면 이철희가 아닌 거지.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거죠.
양쪽 진영에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도 하죠. 근데 씁쓸한 건, 이철희란 놈을 알아보니 실력이 있더라, 하고 인정해서 데려가면 좋겠는데 요즘 떴으니까 데려가겠다면 나는 사양하고 싶어요. 그렇게 정치한들 막말로 뭘 하겠어요? 유명세만 가지고 정치해서 잘된 사람 봤어요? 없거든요. 실제로 국회의원 안 할 수도 있고요. 내가 무슨 대단한 놈이라서가 아니라, 그거 안 해도 욕 안 먹고 살잖아요. 배지 단다고 가문의 영광일까? 요즘 배지는 옛날처럼 영광도 아닌 것 같아.
우리 사회에서 좌우 대립이 있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인가요?
저는 갈등과 대립이 문제라고 보진 않아요. 무엇을 둘러싼 갈등이고 대립인지가 중요하다고 보죠. 지금 우리 사회가 갈등하는 주제는 옳지 않다고 봐요. 적절한 주제는 아닌 거죠. 예를 들어 먹고사는 문제, 이 계층에게 열을 줄 거냐, 다섯을 줄 거냐를 가지고 싸우면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안 싸워요. 조곤조곤 싸울 수 있어요. 근데 지금 우리 사회의 주제, 특히 정치·도덕적 이슈들은 무조건 내가 선이고 상대가 악이에요. 이건 이분법이거든요. 결국 주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제가 바뀌면 지금 같은 극단적 대립은 안 생겨요. 그런 면에서 답답함을 느껴요. 빨리 주제를 바꾸어야 해요.
좌우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방송을 하러 가면 저도 저 자신에게 무수히 주문하는 게 있어요.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린 게 아니다.' 서로가 다를 뿐이지 선악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무조건 옳다고 하면 민주주의 왜 해요. 갈등과 대립을 풀 때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는 전제로 움직여야지 타협이 되는 거예요. 난 정치의 본질이 타협이라고 보거든요. 정치의 본질은 정의 구현이 아니에요. 타협이죠. 목표는 정의 구현일지라도, 그걸 정치라는 방법을 통해 실현하려고 할 때는 타협해야 할 수 있어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해야 타협이 되죠. 그래서 나는 타협이 돼야 정치가 살아날 수 있다고 봐요. 근데 우리 사회의 갈등은 타협이 안 되는 영역에서 싸우니까 일어나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빨리 다른 주제로 가야 해요.
타협이 없다는 건 현 박근혜 정권이 그렇다는 말인가요?
박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요. 그 점에서 박 대통령이 키를 쥐고 있는 건 분명하죠. 박근혜 대통령이 조금 더 통합적 리더십, 타협적 리더십을 발휘하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책임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죠.
소장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평소 겪은 황당한 경험이 있나요?
남산에 가끔 산책을 가는데 저만 보면 호통을 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세요. 처음에는 대꾸도 안 하고 피해 다녔죠. 그래도 웃으면서 대해야지 어떡합니까. 삿대질하고 싸울 수는 없는 거니까요. '저분도 저분 생각이 있다'라고 좋게 받아들이려 하죠. 어떤 사람은 지나가다가 절 보면 '이철희 화이팅!' 하면서 용기를 주시기도 해요.
정치권 고위 사람이 전화해서 위협을 가한 적은요?
대놓고 저한테 그러지 마라 한 적은 없어요. 여담인데, 제가 모 신문에 정기 칼럼을 써요. 한번은 김기춘 실장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어요. 그걸 본 김기춘 실장에게서 전화가 왔죠. 통화를 하는데, 제가 듣기에 전혀 거슬리는 말은 안 했어요. 오히려 '잘 봤다.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 나는 사심 없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 앞으로도 혹시 비판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해달라'라고 아주 정중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한참 어르신인데 너무 정중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그 전화를 받고 나서 느낀 게 '이분 참 선수다. 사람 다룰 줄 아는 구나'.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한 1주일 동안 혼자 묵혔어요. 그리고 1주일 뒤에 오픈했어요. 마음의 부담을 안 가지려고요. 나는 그게 우회적 압박이라고 해석하진 않아요. 김기춘 실장은 자기 성의를 보인 거고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내 몫인데, 나는 그걸 압박으로 안 받아들였거든요.
비판할 때의 원칙도 있나요?
어떤 비판이든 그 사람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건 안 좋죠.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지요. 그런 건 좀 피하려고 해요. 근데 제가 그걸 유일하게 잘 못하는 사람이 MB예요. 무지 싫거든. 솔직히 싫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분에게도 인격에 상처를 주는 발언은 안 해야겠다' 하고 반성하는 대목도 있어요. 이젠 좀 자제하려고요.
경북 영일이 고향이시잖아요. 이명박 대통령 때 그쪽이 실세 아니였나요?
제가 제대로 된 영일포(영일-포항) 라인이에요.(웃음) 경북 영일 출신에다 고대 나왔잖아요. 거기다 경주 이가예요. 거의 선골 아니면 진골 정도 되는 스펙을 갖고 있는데, 제가 우스갯소리로 '줄 잘못 선 영일포 라인이다' 그래요.
그쪽 모임에도 가봤나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그런 모임이 있는 줄도 몰랐고요. 제가 열심히 사람 만나러 다니는 스타일이었으면 한 번은 만났겠죠. 근데 제가 의외로 사람들 사귀는 걸 잘 못해요. 모르는 사람한테 가는 걸 꺼리고요. 그러다 보니 만날 기회가 없었죠. 만났으면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웃음) 거기 엮였으면 방송 안 하고 딴 데 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아버지, 남편, 등산 애호가 그리고 'BMW' 시민
그는 올해 수능을 본 첫째 아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를 선물했다. 아직은 독서에 흥미가 없는 아들, 그런 아들에게 '독서 좀 해라'라고 잔소리하는 아버지. 여느 부자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 첫째가 대학 들어가지 않았나요?
못 들어갔어요. 큰놈이 재수해요. 작은놈은 이제 고3 돼서 우리 집에 이제 수험생이 둘이에요.
공부 잘합니까?
그럭저럭 해요. 근데 이놈이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적당히 하는 스타일이죠. 근데 정말 피는 못 속이더라고요. 나랑 똑같아요. 나랑 똑같으니까 뭐라 할 말도 없고요.(웃음) 저는 애들이 좋은 대학 갔으면 좋겠다는 걸 강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원샷으로 그 친구의 인생이 장밋빛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두 번, 세 번의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얘기는 해요. '최소한 네가 학생이라면 학생답게 공부는 좀 해라. 잘할 필요는 없다. 책이라도 봐라.' 근데 이놈이 책을 안 보네.(웃음)
공부 잘한다면서요.(웃음)
학교 공부는 하는데 독서를 안 해요. 수능 끝나고 책을 열 권 줬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 예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니까 읽어봐, 그랬더니 한 달을 끌더라고요. 읽기 싫은 거야. 결국 한 달 만에 읽더라고요.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면 따라온다는데 예외도 있구나.(웃음) 그렇게 생각해요.
재수 선배로서, 인생의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까?
난 재수를 잘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근데 뭐 재수도 자기 인생의 경험이죠. 나는 아들이 (재수를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시험공부를 하면 얼마나 더 하겠어요. 고3 때는 억지로 한 거라면 이제는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이 시간에 왜 학원에 앉아 있는지 이런 걸 깨달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의 20년이 채 안 되는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였으면 좋겠다는 거죠. 지금쯤 그 문단 나누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데, 그런 식으로 자극을 줘도 스트레스는 있나 봐요. 재수생이 갖는 스트레스 있잖아요. 근데 그게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근데 그것도 자기 몫이니까요. 의외로 내버려두는 스타일이에요.
아내 분은 일하십니까?
집에 있죠. 원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애들 키운다고 그만뒀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은 애를 키우기에 가장 좋은 직업 아닌가요?
근데 본인은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선생님 그만두고 애를 키우니까 애한테 올인하죠. 그래서 내가 볼 때 두 놈 다 마마보이가 됐어요.(웃음)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애들 있잖아요.
엄마가 학원 스케줄 다 짜주는?
'너는 뭐 하냐, 임마' 이러면 '엄마가 다 알아봐' 그래요. 엄마가 해결사이자 웬수이자, 그런 거 있잖아요. 숱한 역할을 엄마한테서 찾고 있어요.
나중에 정치하겠다고 하면 사모님이 걱정 안 해요? 정치하면 돈도 많이 들 테고 미래가 불확실하잖아요.
우리 와이프는 복잡한 생각은 안 해요.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가 단순하게 판단하는 거예요. 폄하하는 발언이 아니라, 리더의 조건 중 하나가 상황을 단순하게 볼 줄 아는 능력이거든요. 간명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되는데, 이 친구는 스타일이 그래요.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싫어하고 쉽게 판단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걸(방송) 그만두면 어떻게 될 거다, 그런 계산은 별로 안 해요.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써버리는 스타일이고 없어도 써버리는 스타일이에요.(웃음)
물론 지금 당장은 정치를 안 하지만 하려고 하면 반대하지 않을까요?
우리 집사람이 내가 뭘 한다고 그랬을 때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 건 딱 한 번이에요. 청와대에서 나올 때요. DJ 때 청와대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좀 더 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러저러해서 나가겠다고 하니까 더 이상 얘기 안 하더라고요. 뭘 하든 시비 걸진 않았어요. 제 판단 존중해주고요. 복잡하게 생각 안 한다니까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웃음) 저는 비관적으로 보는 편인데 이 친구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봐요.
취미는 없나요?
등산 좋아해요. 매주 한 번은 가려고 해요. 새벽에 가요, 사람 없을 때. 산에 가서 땀 쫙 빼고 목욕탕 가서 목욕하면 좋잖아요. 그리고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집에 가면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리고 축구 좋아해요. 축구 동호회 모임을 만들어서 십 몇 년째 하고 있죠. 이젠 나이 먹고 배 나와서 필드에선 못 뛰어요. 골킥이나 보고 있는 거죠. 그리고 책 보는 거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일요일 아침이에요. 다들 늦잠 자잖아요. 그때 일찍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끓인 다음 햇볕 잘 드는 거실에 앉아서 책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책은 어떤 종류를 보나요?
종류는 잘 안 가려요. 정치, 역사, 사회. 문화 쪽도 관심 많고요. 책을 많이 사요.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이에요. 1년에 책 많이 사는 사람 랭킹에 들어갑니다.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에서 오면 왜 이렇게 책이 많으냐고 물어요. 서점 하다 망했어요, 그러거든요.(웃음) 책 욕심이 많죠. 그런 게 취미예요. 그 밖에는 짧게 여행 가는 거 좋아해요. 보는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하고 어디 가서 푹 찌그러져서 쉬다 오는 걸 좋아하죠. 아니면 술 먹는 거요. 옛날처럼은 안 먹지만요.
예전에는 주량도 셌을 것 같은데요?
옛날에는 술 많이 먹었어요. 소주는 잘 못 먹고 양주 폭탄, 소주 폭탄은 20~30잔씩 먹었는데 요즘은 한 자릿수에서 어지간히 하다가 일찍 들어가요. 나이 먹는다는 게 딴 게 아니에요. 숙취가 심해요. 술이 안 깨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요. 방송에 앉아서 떠들어야 되는데 이게 안 돌아가면 무지 답답하거든요. 그게 민폐예요. 그래서 술자리를 좀 줄이고 시간도 짧게 하는데, 그것도 좀 아쉽죠. 술 먹는 사람들은 술 마시면서 얘기하고 푸는 게 있잖아요. 이제는 그런 시간도 다시 좀 가지려고요.
보는 눈이 많아져서 술 먹는 것도 조심스럽겠어요.
이제는 술집 가면 어지간하면 다 알아봐요. 아주 허름하게 입고 가면 안 보는데, 웬만치 차려입고 가면 쳐다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예외 없이 쳐다봐요. 행동거지가 조심스럽죠. 편하지가 않은 거야. 근데 그럴수록 피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연예인이 아닌 이상 대중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죠.
아까 말했듯 방송은 계속 쏟아붓기만 하잖습니까. 어떻게 채우려고 노력하나요?
일단 책 보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해요. 우선 뭐가 좀 들어와야 되잖아요. 들어온 걸 가지고 생각을 해야 되니까요. 공자가 그런 말을 했어요. '공부는 하되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공부는 안 하고 생각만 하면 위험하다.' 공부는 안 하고 내뱉기만 하면 위험한 상황까지 갈 수 있거든요. 여기서 스톱할 때라고 스스로 경고등을 켰어요. 이제는 좀 더 채우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다시 처음이 떠올랐다. 스튜디오를 들어서는 그에게 주차는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BMW’를 타고 했다”고 한다.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 말이다. 서민인 체하려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차도 없다고 한다. 운전면허도 없다. ‘뭐 어떠냐’는 표정으로 “익숙해 편하고 좋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어쩌면 가장 큰 용기는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소유욕이든 권력이든 말이다. 그래야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