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열세 번째가 용간편(用間篇)이다. 상대 주민과 관리를 매수해 정보를 빼내는 인간(因間)과 내간(內間), 적 간첩을 역이용하는 반간(反間), 헛소문 퍼뜨리는 심리전 요원 사간(死間), 적 사정을 염탐해 보고하는 생간(生間)까지 다섯으로 첩보 활동을 나눴다. 손무(孫武)는 첩자 양성에 전쟁 승패가 달렸다며 돈을 아끼지 말라 했다. 동서고금에 가장 유명한 '스파이 운용 지침'이다. 미 CIA도 알아준다.

▶냉전 시대 미국 CIA와 소련 KGB는 상대 깊숙이 두더지(간첩)를 심었다. 1940년대 IMF 창설을 주도했던 미 재무부 관료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KGB 두더지였다는 폭로도 있었다. 소련에 수십억달러 이득을 안겨준 화이트가 IMF 총재에 오를 뻔했지만 후버 FBI 국장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그 뒤로도 툭하면 앙앙불락이다. 2001년에도 외교관 50명씩을 맞추방했다.

▶손무의 후예 중국·대만도 뒤지지 않는다. 대만 독립을 외친 리덩후이가 1996년 총통 선거에 나서자 중국이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쐈다. 리는 '쇼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공포탄이라는 정보를 중국군 장성을 매수해 미리 입수했기 때문이다. 10여년 뒤엔 중국이 한 방 먹였다. 미인계로 대만군 소장에게서 군사기밀을 줄줄이 빼냈다. 손자병법식으로 하면 내간, 요즘 말로는 '휴민트(HUMINT)' 활동의 결과다.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의 합성어 휴민트는 사람이 하는 첩보 활동을 가리킨다. 감청 장비 같은 첨단 기술을 쓰면 '시긴트(SIGINT)'라 한다. 체제 경쟁은 한물갔어도 온 세계가 경제 전쟁터다. 시긴트 강국 미국도 휴민트망 구축에 못지않은 돈을 쓴다. '잘 키운 정보원 하나, 열 첩보위성 안 부럽다'고 할까. 우리의 대북(對北) 휴민트망은 중국 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동북 3성이 주무대다. 탈북 루트인 데다 말 통하고 핏줄 같은 조선족이 산다. 인권 운동가, 선교사, 대북 사업가가 모이는 정보 집산지다.

▶랴오닝 선양서 만난 어떤 이는 "안보 최전선은 휴전선이 아니라 동북 3성"이라고 했다. 쓸 만한 정보원 하나 키우는 데 길게는 10년 걸린다고 한다. 중국의 간첩 잡는 반특(反特) 눈초리가 정보원에겐 위협이다. 정보원이 잡혀 갇히거나 영문 모르게 죽었다는 얘기도 가끔 들려온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국정원이 애써 만들어놓은 대북 휴민트망을 제 발로 짓밟는다는 걱정이 나왔다. 의혹은 의혹대로 규명하되 감쌀 건 감싸줘야 한다. 초가삼간 다 태우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