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산율은 저출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과는 상관없이, 띠에 따라 요동치는 특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띠는 쥐·소·호랑이 등 12개 동물 띠를 말한다. '2000년 밀레니엄해'와 '2006년 쌍춘년' 외에도 '2007년 황금돼지해' '2010년 백호해' '2012년 흑룡해'가 "좋은 아기가 태어나는 해"라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출산 붐이 일었다. 반면 작년 '검은 뱀띠해'에는 띠 영향력이 전혀 없어 출산율이 뚝 떨어지고 신생아 수도 급감했다. 이처럼 띠에 따라 아기를 가려 낳는 현상은 자녀를 한둘만 낳는 저출산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두드러진 풍습이 됐다.
◇황금돼지·흑룡해에 출산율 반짝
직장 여성 임모(36)씨는 "200년 만에 오는 결혼하기 좋은 해"라는 쌍춘년 속설에 따라 2006년에 서둘러 결혼했다. 2007년엔 "아기에게 재물 운이 따르는 황금돼지해"라는 소문이 퍼졌다. 임씨는 주저하지 않고 임신했고 그해 아기를 낳았다. 임씨는 "좋은 띠라는 해에 자식을 낳는 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임씨의 경우처럼 쌍춘년에는 결혼 붐이 일고 황금돼지해에는 출산 붐이 일었다.
한국은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 붐'을 겪은 뒤 5년간 출산율이 급락하면서 출산율에 비상이 걸렸다. 2005년은 최악이었다. 불황과 취업난이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출산율(1.08명)과 신생아 수(43만명)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6년에 갑자기 결혼식장들이 분주해졌다. "올해 결혼하면 백년해로한다는 쌍춘년"이라는 소문에 따라 결혼 건수가 전년보다 1만6630건이나 늘어났다. 이듬해는 황금돼지해라며 앞다투어 아기를 낳는 바람에 신생아가 전년보다 4만5000명 더 태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기가 불황에 빠지면서 출산율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나 '띠' 문화가 다시 영향력을 발휘했다. 백호해(2010년), 흑룡해(2012년)라며 출산 붐이 다시 일었다. "호랑이와 용의 기를 받아 영특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실제 백호해에는 둘째를 낳는 부모들이 크게 늘어났고, 이런 풍조는 흑룡해로 이어졌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저출산 시대가 되면서 기왕이면 아기에게 좋다는 해를 찾아 낳겠다는 부모의 심리가 반영되고, 이런 띠 소문이 광고나 매체를 통해 확산된 결과"라고 말했다.
◇붉은돼지해가 황금돼지해로 잘못 알려져, 쌍춘년은 중국 출산 붐
하지만 묘한 것은 이런 출산 붐이 엉뚱한 띠 소문에 좌우됐다는 지적이다. 쌍춘년은 200년 만에 오는 게 아니라 중국에선 2~3년에 한 번씩 오는 해다. 2007년은 황금돼지해가 아니라 실제로는 '붉은돼지해'였는데, 잘못 알려졌다. 띠는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5가지 색깔을 동물 이름 앞에 두 해씩 연이어 붙인다. 올해는 청마의 해이고, 내년은 청양의 해이다.
올해 "청마 띠는 기가 세다"라는 말이 퍼지면서 올해도 출산율이나 신생아 수가 늘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역학 전문가 이명진씨는 "백마 띠 해는 딸에게 나쁘다고 하는 말이 일본에서 수입됐듯이, 쌍춘년은 중국 풍습이 수입된 것"이라며 "앞으로 띠를 좋은 쪽으로 해석해 출산율을 올리는 데 적극 활용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화권은 호랑이해 기피… 용띠해는 출산율 급상승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백호(白虎)해는 "용맹한 호랑이띠"라며 전년보다 신생아가 2만5322명 더 태어났다. 하지만 중국 문화권인 대만과 싱가포르는 우리와 반대다. "호랑이해에 태어난 아이는 난폭하고 가족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속설 때문이다. 대만에선 2010년 출산율이 1.12명에서 0.9명으로 떨어졌다. 1998년 호랑이해에도 신생아가 5만명이나 줄어들 정도였다. 싱가포르도 호랑이해엔 출산율이 매번 7%가량 떨어진다. 2010년 새해를 맞아 싱가포르 총리가 특별히 "호랑이해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을 정도였다.
반면 용의 해는 다르다. 중국·싱가포르·대만·홍콩·태국에서 공통적으로 "용띠 아이는 용기와 지혜를 갖고 가정에 행운을 가져온다"며 출산율이 부쩍 오른다. 대만에선 2011년 출산율이 0.9명에서 1.26명으로 높아졌고, 홍콩도 신생아 수가 크게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