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파딜라' 감독의 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꽤 오래 전, 그러니까 1987년에 '폴 버호벤' 감독이 만든 원작 의 강렬한 충격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새로 리메이크된 의 퀄리티를 평가해 봐도 된다.

굳이 원작과 비교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비록 원초적인 재미는 원작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CG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이번 리메이크작은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 만큼 그냥 가볍게 즐겨도 좋다.

원작 을 알지 못하는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리메이크된 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일단 내러티브 자체가 구미가 당긴다. 인간과 기계가 합쳐진 로봇 경찰이 갈수록 악랄해져만 가는 미래 사회의 범죄를 소탕한다고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 리메이크작은 굉장히 철학적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의외의 복병을 만난 기분이다.

물론 원작에서도 휴머니즘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리메이크작은 깊이가 한층 깊어진다.

그것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토크쇼를 진행하는 팻 노박(사무엘 L 잭슨)의 일장연설에서부터 두드러진다.

그는 갈수록 악랄해져가는 범죄소탕을 위해 로봇 테크놀로지 기술을 가진 다국적 기업 '옴니코프'사의 로봇들을 도시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계인 로봇에 대해 거부반응을 갖고 있는 국민정서가 로봇 투입을 방해한다. 그것은 곧 옴니코프사의 수익확장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옴니코프사는 국민적인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인간과 로봇을 합체하기로 마음먹고 대상을 찾던 중 갱들의 테러에 의해 크게 다친 머피(조엘 킨나만)를 찾아 그를 로보캅으로 만든다. 좋게 말하면 머피에게 새 생명을 준 셈이다.

외형상으로 이번 리메이크작이 원작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머피가 다치는 과정에 있다.

원작이 갱들의 집단 총격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게 그리면서 머피의 복수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번 리메이크작은 폭탄테러로 머피가 다치는 설정이다.

그렇다보니 복수의 카타르시스는 원작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신 이번 리메이크작에서 머피의 분노가 향하는 곳은 머피를 그렇게 만든 갱들보다는 사고로 남겨진 자신의 뇌와 심장에 기계 부속품을 갖다 붙인 '옴니코프'사다.

그것을 통해 영화는 기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철학적인 질문들을 마구 던진다.

즉, '휴머니즘'과 기계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인 '효율성'을 놓고 끊임없이 경중을 따지는데, 그것은 곧 로보캅이 된 머피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계로 볼 것인가의 문제와도 맥을 같이 한다. 원작에 비해 철학적인 고민들이 한층 깊어진 까닭이다.

물론 예상하겠지만 영화는 머피에게 남겨진 '뇌'와 '심장'이 의미하듯 로보캅의 질주를 통해 갈수록 돈과 이익에 매몰돼 가는 휴머니즘(인간성)의 회복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번 리메이크작에서는 기계가 가진 장점인 '효율성'에 대해서도 보다 큰 담론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그것은 로보캅의 등장으로 할 일이 없어진 다른 경찰들의 당황스런 표정 속에서도 조금 읽을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는 로봇의 대량투입을 통해 돈을 벌려는 '옴니코프'사의 행위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바로 기계화가 인간을 위해 진정 효율적인가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사실 원작이든 이번 리메이크작이든 이란 영화 자체가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 디스토피아를 공통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 그것은 오늘날 대다수 기업들이 영화 속 옴니코프사처럼 효율성을 내세우며 기계화를 진행하고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물론 기계화가 되면 인간이 다칠 일도 없고, 능률도 증가한다. 그러나 기계화로 인간이나 인간성은 점점 설 자리를 잃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계화를 통한 고효율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 답은 원작에서든 리메이크작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 방송리포터가 제주도 해녀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고된 숨 참기로 저산소증과 고압증, 두통 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그 리포터는 "스킨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해녀 한 명이 40명의 일을 해낼 텐데 왜 산소통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인터뷰에 응한 한 해녀의 대답이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그럼 나머지 39명의 해녀들은 어떻게 먹고 삽니까?"

산소통을 맨 1명의 해녀와 40명의 해녀. 과연 어느 게 더 효율적일까.

2월13일 개봉. 러닝타임 12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