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계는 사범대학이 틀어쥐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서울대 교육학과가 있다. 이 사람들이 교육부와 주요 교육기관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서강대 이모 교수)

“교육계는 폐쇄성이 강하다. 아무나 끼워주지 않는다. 워낙 끈끈한 유대로 묶여 있어 교육 마피아라는 말이 공공연하다.”(한양대 배모 교수)

“교육부 출신의 대학교수들이 많다. 사범대학 출신의 교육부 공무원들이 국비로 해외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되는 거다. 이 교수들이 교육부 연구를 맡으면 교육부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흔하다.”(교육학 박사 출신 연구원)

‘교육계 마피아’.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육계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적으로 쓴 표현이다. 정부의 연구 과제를 수행해본 교육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교육계의 끈끈한 유대를 거론했다. 교육계는 학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는 것이다.

학맥은 서울대 교육학과, 공주사대가 끈끈하고, 교육부 출신 교수들 사이의 유대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청와대에서도 이와 관련된 언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부 출신인 성균관대 배모 교수와 한양대 박모 교수가 교육부 연구과제를 독점했다는 말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교육’과 ‘마피아’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의 조합. 과연 실체가 있을까? 이로 인해 양산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문제의식을 품고 교육연구기관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교육계 마피아’를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존재가 교육부 출신 교수들이다. 교육계에는 교육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국비로 유학을 다녀온 후 대학교수에 임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학 입장에서는 교육부 출신 교수를 선호한다. 교육부 인맥으로 정부 과제 수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대학정책중점연구소에는 교육부 출신 교수들이 꽤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성균관대 사교육정책연구소, 고려대학교 고등교육정책연구소,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에는 교육부 출신 교수들이 있다. 이들이 직접 소장을 맡지 않아도 연구소를 수주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교육 관련 연구의 핵심 기관은 한국교육개발원이다. 1972년에 설립된 교육개발원은 교육과정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는 전담기구다. 한국교육개발원 역대 원장의 프로필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역대 원장은 100% 서울대 사범대 출신이고, 13명의 원장 중 두 명을 제외한 11명이 모두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왔다.

또 이들은 하나같이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를 마친 후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4대 홍웅선 원장만 석사를 미국 조지피바디대학에서 마쳤고, 나머지는 예외 없었다. 40여년간 ‘서울대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학 석사, 미국 대학 교육학 박사’라는 프로필 공식을 밟아온 것이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와 교육개발원에서 근무한 서모 전 홍익대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의 교육학자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미국 대학에는 흐름이 있다. 초기에는 조지피바디대학을 선호했고, 이후에는 컬럼비아대학, 피츠버그대학, 오하이오대학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 중에도 유사한 경우가 꽤 있다. 문용린 전 장관(2000년 1~8월)은 서울대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심리학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 교육심리학 박사 출신이고, 이돈희 전 장관(2000년 8월~2001년 1월)은 서울대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학 석사, 미국 웨인주립대 대학원 교육철학과 박사를 받았다. 김신일 전 장관(2006년 8월~2008년 2월) 역시 서울대 교육학과, 서울대 교육학 석사, 미국 피츠버그대 교육학 박사 출신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의 교육계 요직 독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울대는 한국 최고의 두뇌가 모이는 곳이고,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이 한국 교육계의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서모 교수는 “교육개발원은 우리나라 교육의 싱크탱크다. 서울대 교육학과가 최고의 교육학과이니 교육개발원의 수장을 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온 1세대 교육학자들의 공로는 혁혁하다. 광복 이후 교육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새교육’으로 불리는 미국식 교육을 들여와 교육의 기틀을 다잡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재들을 배출할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다. 교육계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서강대 이모 교수는 “서울대 교육학과의 역사적 뿌리는 깊다. 사회 전체적으로 고급인력이 부족한 시대에 똑똑한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학을 공부했다. 정범모 선생님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들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통째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양성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도 달라진다. 광복 이후에는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교육개혁이 맞다. 하지만 ‘꿈과 끼’ ‘창의성’을 모토로 내건 시대에 여전히 똑같은 학교, 똑같은 코스를 걸어온 교육계 인사들이 변함없이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이 바람직할까?

한양대 배모 교수는 “서울대 교육학과는 빙상연맹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이 우리나라 교육을 세웠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올라섰다. 다양성이 필요한 시기다. 폐쇄성을 고집하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 한국 빙상을 봐라. 초기에는 잘해서 세계 수준에 올랐지만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폐쇄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나.”

서강대 이모 교수는 ‘교육학자의 게으름’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학 박사 중에는 Ph.D가 거의 없다.(Ph.D는 순수 학문적 연구를 한 박사이고, Ed.D는 교육현장이나 교육행정가 등 실용적 연구를 한 박사이다.) 공부를 참 안 한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교육제도를 만들기보다 외국에서 들여오려고만 한다. 수능·수행평가는 미국에서, 개방교육은 영국에서 가져왔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미국과 영국, 호주 등 교육 선진국에서 들여와 짬뽕한 거다. 박사학위 때 가졌던 교육철학을 정년퇴직할 때까지 고집하는 것이 교육학계의 관행이다. 바뀌어야 한다.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울대 교육계의 연구 업적은 어떨까. 주간조선이 입수한 ‘연구재단 구축 DB를 활용한 학술 연구의 생태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교육학 분야는 이름값을 못했다. 연구비 지원은 최상위였으나, 연구 실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교육학 분야 연구비 수혜 상위 연구자 자료를 보면, 1위와 2위는 모두 서울대학교 교수다. 연구비를 가장 많이 받은 서울대 교수는 연구 업적 면에서 2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 실적을 거둔 대학은 부산대다. 2위는 공주대, 3위 대구대, 4위 단국대, 5위 이화여대 순이고, 서울대는 창원대보다 낮은 7위였다.

연구 실적이 뛰어난 개인으로는 이화여대 박은혜 교수가 교육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이화여대 이소현 교수, 3위는 이화여대 박승희 교수, 4위는 서울대 김동일 교수, 5위는 이화여대 김영태 교수가 차지해 1~3위, 5위를 모두 이화여대가 휩쓸었다.

한국연구재단 주도로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만든 이 자료는 2004년부터 10년간 등록된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자 및 기관의 연구 영향력을 입체적으로 평가한 자료다. 이 결과에 따르면 지방대 교수의 연구능력이 서울 상위권 대학 교수에 뒤처지지 않았고, 연구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부의 연구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학자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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