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담동에 있는 S갤러리는 지난 몇 년 간 재벌과 정치인들의 돈세탁(비자금이나 탈세 등 범죄행위를 통해 얻은 수입을 조작해 자금 출처를 은폐하고 추적을 어렵게 하는 행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종종 뉴스에 이름을 올리곤 했습니다. 재벌이나 정치인이 미술품 거래를 통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은닉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는 건데요, 이 때문에 갤러리는 ‘S세탁소’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미술품 거래를 돈세탁에 악용하는 일은 이웃나라인 중국에서도 성행하나봅니다. 20일(현지 시각) 미국 경제매체 CNN머니에 따르면, 중국의 부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을 미술품을 통해 해외나 케이맨군도,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등 역외의 계좌로 빼돌리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CNN머니는 “중국 금융 당국이 1년 간 국민 한 사람 당 해외로 유출할 수 있는 돈을 5만달러(약 5400만원)로 한정하고 있음에도, 중국 부자들은 여전히 조각과 그림, 서예작품을 통해 역외 돈세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부자들은 미술품을 활용해 어떻게 돈세탁을 할까요?
CNN머니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식을 소개했습니다. 먼저, 중국 본토에서 미술품을 구입한 뒤 해외에서 비싼 값에 되파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익은 중국 위안화가 아닌 외화이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의심을 받지 않고 애초에 갖고 있던 돈의 출처를 자연스레 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미술전문잡지 아트뉴스페이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고미술품의 규모는 1억910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것보다 1억700만달러나 많은 액수입니다. 암시장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미술품의 불법 거래가 그만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죠.
또 한가지 방법은 해외에서 차명 계좌를 이용해 미술품을 부풀려진 가격에 사는 것입니다. 중국 부자가 공모자로부터 미술품을 원래 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구입하면, 이 공모자는 자기 몫의 수수료를 떼어간 뒤 남는 돈은 미술품을 산 중국 부자의 역외의 계좌에 입금합니다. 금융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경우 날조된 영수증을 보여주고 미술품을 구매했다고 우기면 감시망을 피해갈 수 있다고 CNN머니는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미술품이 돈세탁에 빈번하게 활용되는 이유는 가격 산정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미술품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 주관적이고 불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품이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거래돼도 섣불리 의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거래 방식의 특성도 미술품이 돈세탁에 이용되기 쉬운 이유 중 하나입니다. CNN머니에 따르면, 미술품은 주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돈의 출처나 향방을 알 수 있을 만한 증거가 남지 않습니다.
홍콩의 리스크컨설팅업체 트랙아트에서 근무하는 폴 테한씨는 “미술품 거래는 익명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돈세탁을 위한) 책략이 끼어들기에 좋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의 비영리 조사기구 ‘국제금융청렴(GFI)’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미술품을 통해 중국 밖으로 흘러나간 돈의 규모는 1조800억달러(약 1200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술품을 이용한 중국 부자들의 돈세탁 관행을 뿌리뽑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CNN머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업체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업체는 현재 중국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는 지난해 9월 중국에서 177억원 규모의 첫 미술품 경매를 진행했으며, 같은해 12월 소더비도 중국에서 첫 경매를 열고 391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NN머니는 또 미술계 일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부패 자체를 뿌리뽑는 것만이 미술품 거래를 이용한 돈세탁을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등 금융 범죄가 성행하는 한, 미술품을 통한 돈세탁 관행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