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한국방송통신대 조남철 총장 앞으로 7장짜리 장문(長文)의 편지가 도착했다. "택시 운전을 하시면서 당당히 방송대 법학과를 졸업하신 저희 아버지 사연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로 시작한 편지엔 김기대(44)·영엽(41)씨 형제의 간절한 청(請)이 담겨 있었다.
형제의 아버지 김경태(72)씨는 작년 가을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방송대를 졸업했다. 가을 졸업엔 따로 졸업식이 없고 김경태씨 역시 굳이 '졸업식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란 생각에 졸업장만 받고 학교를 떠났다.
하지만 아들 형제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고, 학사모를 쓰는 게 얼마나 큰 소원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기대씨는 편지에 "아버지께서 말씀은 졸업식 필요 없다 하시지만, 학사모는 꼭 쓰고 싶으실 것"이라며 "지금껏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에 작은 보답이라도 드리고 싶었다"고 썼다. 이들은 "학교 차원에서 아버지께서 졸업식에 참석하도록 설득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조 총장은 편지를 받자마자 "아드님들의 아버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 아버님의 배움에 대한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아버님과 함께 모든 가족이 졸업식에 꼭 참석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답장을 보냈다.
홀어머니 아래서 가난하게 자랐던 김경태씨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다.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법관이 되고 싶다는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고, 여기저기 식당일을 전전하다 스물일곱에 시작한 택시 운전은 평생 직업이 됐다. 못 배운 게 한(恨)이 된 그는 자식들의 교육에는 열과 성을 다했다. 두 아들은 모두 명문대를 졸업하고 기대씨는 건설회사에서, 영엽씨는 항공기술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애들 다 키우고 나니까 공부 욕심이 생겨서 예순다섯(2007년)에 중학교 검정고시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남 영엽씨가 참고서를 사다 나르며 아버지의 과외교사를 자처했다. 2009년에 방송대에 입학한 그는 택시 일을 하면서 강의 테이프를 듣고, 밤낮으로 공부했다. 김씨는 "없이 살다 보니, 부당한 일을 많이 겪은 게 한이 돼 법 공부를 택했다"며 "나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면 내가 공부한 것으로 꼭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19일 방송대 졸업식을 맞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방송대 교정엔 김씨 가족들이 총출동했다. 김씨는 빨간 넥타이로 멋을 냈고, 아내 이태자(66)씨는 보랏빛 코트를 차려 입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입은 김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기대씨는 "아버지는 존경스럽단 말밖에 안 나오는 분"이라며 "이렇게 졸업식을 마련해 드려 뿌듯하다"고 했다. 김씨는 아들의 어깨를 도닥이며 속삭였다. "우리 아들,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