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이 보낸 사람> 스틸

“숨 한 번 편히 쉴 수 없었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을 보고 난 이들의 후기에서 여러 번 발견되는 말이다.

'북한 14만 지하교인 이야기'인 영화는 듣던 대로 막이 오르자마자 숨을 들이키게 만든다. 눈을 질끈, 감고 싶기도 하다.

영화는 일단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스토리로 마음을 녹이고, 관객과 인물이 친해지고 난 뒤 본격적으로 환난을 겪어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장르적 장치나 인물의 감정선에 기대는 쉬운 길 대신, 그저 보여준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현실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휴전선 너머에서는 이런 일이, 이보다 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는 명백한 ‘현실’과 이런 영화를 보며 눈물을 쏟는 것으로 북한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을 털어버리려고 했던 우리의 허약한 ‘현실’이다.

‘신이 보낸 사람’의 김진무 감독(32)은 인터뷰 중 ‘거울’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다만 북한의 현실을 비추길 원했고, 거기에 비친 남한의 모습을 돌아보길 원했고, 그것이 다름 아닌 나의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했다. 감독의 의도는 빗나가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신이 보낸 사람’에 반응했다. 거기에는 좌도 우도 없었다.

영화 개봉 후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스스로 높아지지 말자'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는 김진무 감독(32)과 이야기를 나눴다. (19일 현재, ‘신이 보낸 사람’은 예매율 1위, 좌석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소리없이 강한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진무 감독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의 제목에 담겨진 뜻이 궁금해요.

“원래 제목은 ‘사도’였어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하지만 이 사도라는 말이 대중의 인식 속에는 ‘정의의 사도’처럼 무협 영화 캐릭터로 남을 수 있어서, ‘사도’의 사전적인 의미인 ‘신이 보낸 사람’을 그대로 인용하게 됐습니다. 제목의 추상적인 의미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기도 했고요. 가끔 '신이 내린 사람'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신내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웃음)”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북한을 다룬 영화를 보면 계몽주의적이거나 편향된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영화의 제1원칙은 한 민족으로서 우리가 이 땅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선동을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종교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요.(웃음)”

-시작은 어떻게 된 건가요?

“한 선교단체에서 북한 지하교인에 대한 영상을 봤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이 실태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 영상을 보고는 격하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한참을 울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그 영상인가요.

“미학적인 완성도를 생각하면 영화만 보여주고 끝내는 게 맞아요. 하지만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면 관객에게 친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실제는 영화보다 ‘더 하다’는 게 가장 힘들던데요.

“실제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은 영화보다 더 심각해요. 저희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면, 실제 상황에는 더 할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지는 않았어요. 팩트인가 아닌가보다 중요한 건 '생각의 여지'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좀 더 설명을 한다면요?

“(북한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선만큼이나, 일방적인 연민의 시선도 똑같이 위험하다고 봐요. 인터뷰를 통해 만난 탈북자들이 가장 걱정한 부분이 북한에 대한 감상주의적인 시각이었어요. 촬영 중에 저도 이런 감상에 빠질까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계속 다잡았습니다.”

‘신이 보낸 사람’의 장르는 신파나 기독교 영화가 아닌 '리얼리즘' 영화

-신파로 흐르지 않기를 바란 건가요.

“영화의 장르를 두고 본다면 ‘신이 보낸 사람’은 ‘리얼리즘 영화’에요. 그러기 위해 가장 많이 쓴 촬영 기법이 백 팔로우(back follow)에요. 인물을 뒤에서 쫓는 거죠. 인물의 감정을 감출 수 있고, 반대로 응축시킬 수도 있거든요.”

-크리스천 영화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세요?

“영화에 등장하는 종교는 주제라기 보다는 메타포에요. 기독교인들이 등장하고, 그 색채를 담고 있지만, 그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인권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저희 영화를 본 관객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난 뒤에 흐르는 ‘침묵’. 저희의 의도대로라면, 이 영화를 통해 한민족으로서의 연대적 책임의식이 관객에게 전해지길 진심으로 바랐어요. 조금은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한민족으로서 우리가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휴전선 너머 동포들의 슬픔을 함께 공감해주기를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1년 전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그 당시 충무로 현장에 북한 지하교인들을 소재로 한 인권영화를 가지고 들어간다는 건 큰 모험이었어요. 인터뷰와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면서도 영화로 제작되리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들의 슬픔과 절망을 목도하고, 이끌리는 대로 틈틈이 움직였을 뿐이에요. 후원을 해주십사 찾아갔던 곳들은 ‘영화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뜻밖에 투자자가 나타났는데, 그 곳 대표님은 영화제작은 물론 기독교에 대한 관심도 없는 분이었어요. ‘시나리오에 감동받았다’는 게 투자 이유의 전부였죠.”

-본인을 움직인 건 감독으로서의 사명감이었나요?

“그런 건 제겐 거창하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합니다. 감독이란 원래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찍으면서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것을 만들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게 다였습니다.”

-영화 속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현장에는 기적이 있었다고요.

“많은 예술 장르 중에 노력하는 자가 천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장르가 있다면 저는 그것이 영화라고 믿습니다.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없거든요. 누군가 좀 못나고 부족해도 노력하는 스탭들과의 앙상블이 그 모자람을 채워줘요. 마지막 빈자리는 관객이 채우고요. ‘신이 보낸 사람’에 참여한 배우와 스탭들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의 명분을 가지고 이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크리스천, 그리고 비크리스천이지만 북한인권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 진보 진영의 배우도 보수 진영의 배우도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했어요. 적어도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니까요. 세대와 가치관이 달라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초자연적인 일들보다 이런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신이 보낸 사람’은 특별한 홍보전략이 없었다. 개봉관은 22개로 시작했고, 그마저도 조조와 심야에 몰려있는 '퐁당, 퐁퐁당' 상영이었다. 주연배우 김인권은 스스로 홍보에 나섰다.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마약보다 더 나쁜 것이 기독교라고 하는 그 곳. 목숨을 건 신앙인들의 애통한 이야기. 2월13일부터 시작되는 영화 '신이 보낸 사람', 적은 개봉관으로 출발하지만 여러분의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트통령' 작가 이외수가 리트윗했다.

이 뿐 아니다. 보수진영 대표적 논객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지난 5일 열린 VIP 시사회에 참석하며 눈길을 끌었다. 진보진영 대표적 논객인 진중권 교수도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이 어제 개봉했다고. 한편으로는 시사회에 '변괴'에 가까운 인사가 참석하고, 다른 한편으론 신천지가 허위 선전을 해대는 바람에 부당하게 이미지 타격을 받는 모양.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하고, 인권에는 좌우 없습니다"라는 트위터를 올리며 영화를 응원했다.

-실제로 개봉 후 드물게 진보 인사와 보수 인사가 두루 이 영화를 추천하는 기현상(?)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프로파간다(사상, 교의의 선전활동)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정치적 진영싸움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 민족으로 함께 울어주는 마음, 그 진심과 균형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례적으로 개봉 전부터 이런 저런 소문(?)도 많았고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신천지 연루설, 별점테러, 개독교 영화, 우파선동영화..라는 뭇매를 맞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구설 속에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본질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탈북자들의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탈북 이후에 ‘이곳이 정말 가나안(성경에 등장하는 약속의 땅)인가’ 라는 질문이 더 짙어졌을 것 같아요.

“탈북자들의 민간단체나 새터민 교회를 취재하며 제가 적잖이 놀랐던 것은, 우리 사회가 북한에 대한 혹은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탈북하신 분들 역시, 한국에 와서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북한에서 그 뜨거웠던 마음과 열정이 변질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거죠. 어제(17일) ‘감독과의 대화’에서 영화를 보고 한 탈북자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내가 잊고 있던 것을 다시 깨닫게 해주어 고맙다’고, 제게도 어떤 영화평보다 울림이 있었죠.“

-주인공인 철호(김인권)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주철호는 처음에 자신이 메시야가 되려고 해요. 그러다 실패하죠. 성경이 말하는 메시야의 제1 원리는 ‘자기 부인’이거든요. 결국 철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저는 이 영화가 철호라는 한 인물의 성장영화로도 보여요. 그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나중의 문제고요.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인물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거예요. 나를 비추는 거죠. 거울처럼.“

-마을 사람들을 노인, 임신부, 정신지체, 어린이 등 약자로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그 중에 가장 약자가 용석이(정신지체를 겪는 마을의 청년)죠. 그런데 그 소외되고 가난한 계급이 가장 예수님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각기 다른, 낮고 연약한 인물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기를 바랐고요.“

-영화를 찍는 내내 속으로 기도하면서 임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나요?

”처음 먹은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요. 영화를 만들면서는 이 정도로 이슈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원하던 일도 아니었고요.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교만해지지 않기를, 흥행스코어에 치중하지 않기를 기도해요. 끝까지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니까요. 겸손하게 낮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스마트 폰을 열었다. 김진무 감독은 카카오톡 메시지 인사말에 이런 말을 남겨 두었다.

“흉폭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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