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동, 경북 해안 지방 폭설(暴雪)이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참사로까지 이어진 가운데, 'PEB(Pre-engineered Metal Building Systems)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을 지금처럼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울산·경주처럼 이례적으로 많은 눈이 쏟아진 지역에서 PEB공법으로 지은 건물이 상당수 무너지고 있지만 이런 건물들에 대한 건축 기준은 매우 미약한 상황이다. 매우 실용적이지만 안전에 취약한 건축 방식으로, 용도 제한이나 안전관리 지침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다.

◇창고·축사 건물에 사람 수백명… 사용 용도 제한해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완전히 무너지는 데는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PEB공법으로 지은 건물은 안에 기둥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하중을 못 이겨 무너질 경우 지붕 전체가 폭삭 내려앉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위험이 있는 PEB공법 건물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건물로는 적당치 않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 건설기술 담당 임원은 "PEB 공법으로 지은 건물은 이번처럼 지붕이 무너져내리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창고나 축사, 공장 용도로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두 명은 소리를 듣고 재빨리 대피하는 게 가능하지만 수백 명이 모여 있으면 전체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PEB공법으로 지은 '경량(輕量) 철골구조물'을 따로 분류·관리하지 않고 '철골구조물'에 통합해 놓고 있다. 따라서 이 공법으로 지은 건물이 전국에 어느 정도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PEB공법 건물 실태를 파악하고 용도를 제한하는 등 사고 우려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례적 폭설에도 적설 하중(積雪 荷重) 기준은 '그대로'

건물 지붕에 얼마만큼 무거운 힘이 가해져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적설 하중(쌓인 눈이 건물에 주는 하중) 기준이 폭설 등 기상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10년간 이상(異常)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잦았지만 적설 하중 계수(1㎡당 견뎌야 하는 눈의 무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국토부 기준에 따르면 경주는 면적 1㎡당 50㎏의 눈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건물을 설계하게 돼 있다. 강릉(1㎡당 300㎏)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사고가 난 리조트 체육관 인근엔 최근 80㎝에 달하는 눈이 쌓여 있었다. 건물에 가해진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기준치의 3배에 달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를 비롯해 경북·경남 지역엔 평소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PEB공법으로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오락시설을 지어놓은 곳이 많다"며 "다른 건물이 또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19일 오전 9시쯤 PEB공법이 적용된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의 6640㎡(약 2000평) 규모 물류창고가 지붕 위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됐다.

◇전문가들 "제설 강제하거나 건물 사용이라도 막아야"

19일에도 이 공법으로 지은 건물의 붕괴 사고가 이어졌다. 오전 9시 40분쯤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6640㎡(약 2000평) 규모 물류창고가 지붕 위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붕괴돼 약 2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적설 하중 기준이 경주의 6배인 강릉에서도 PEB공법의 창고가 폭삭 내려앉은 것이다. 창고를 이용하는 회사들은 며칠 전부터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고 신고하고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기도 했지만, 결국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건국대 건축학과 안형준 교수는 "적설 하중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사고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현행법상 적설 하중 계수를 넘어서는 눈이 왔을 때 '눈을 치워야 한다'고 강제하는 규정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건축공학부 최창식 교수는 "제설을 할 수 없다면 건물 사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게 하는 등 안전 지침을 추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건축법상 다중이용시설 중 면적이 5000㎡ 이상인 건물만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점검을 받도록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붕괴된 체육관은 면적이 5000㎡ 이하(1205㎡)였기 때문에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안형준 교수는 "면적이 5000㎡ 이하라도 수백 명이 들어가 있을 수 있는데 정기 안전점검 대상조차 되지 않는 규정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PEB(Pre-engineered Metal Building Systems)공법

철골구조물을 세운 다음 외벽을 샌드위치 패널(얇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유리솜 등 충전재를 넣어 무게를 지탱하게 하는 건축 자재)로 마감하는 공법. 건물 내부에 기둥을 세울 필요가 없어 내부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고, 시공도 간편해 공장·격납고·창고 등 급속 시공이 필요한 경우에 적합하다. 시공 비용도 싸지만 하중(荷重)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