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섹시한 남성은 아시아에서 나온다." '돌체 앤 가바나'를 이끄는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56)가 우리나라 모델 유혁재(Jae Yoo·26)를 보고 한 말이다.

한국 남자 모델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 남자는 유럽·미국 모델에 비해 키가 작고, 중국·일본 모델에 비해선 생김새가 밋밋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다. 훤칠한 키, 선(線)이 섬세한 얼굴, 세련된 워킹,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무장한 우리나라 남자 모델이 런웨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최근 파리·밀라노·뉴욕 컬렉션 무대에 선 아시아 모델은 대부분이 한국인. 파리에서 열린 '겐조 옴므' 컬렉션에선 우리나라 남자 모델만 4명, 영국에서 열린 '비비안웨스트우드' 컬렉션에서도 우리나라 남자 모델 5명을 세웠을 정도다. 예전엔 한두 명이 이 무대들에 서는 것도 큰 뉴스였다.

"지적이면서도 섹시하다"

올해 프랑스 에르메스 멘즈 패션쇼에서 한국 모델 한 명이 무대에 섰다. 모델 박성진(Sungjin Park·24). 2013년부터 매 시즌 14개가 넘는 쇼를 하면서 '동양인 남자 모델 중 최다 쇼 기록'을 자랑하는 주인공이다. 동양인은 캐스팅하지 않는다는 캘빈 클라인 진이 2013년 메인 광고 모델로 발탁했고, 현재 전 세계 모델들의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 '모델스닷컴' 27위에 올라 있다.

(왼쪽부터) 비비안웨스트우드 2014 FW에 선 유혁재, 벨루티 2014 FW 무대의 박형섭, '돌체앤가바나 2014 FW' 무대에서 워킹하는 나대혁, 에르메스 2014 FW 무대에 오른 박성진, 비비안웨스트우드 2014 FW에서 활약한 김태환.

나대혁(Na Dae·28)은 우리나라 남자 모델 최초로 '모델스닷컴' 톱 50에 진입한 인물이다. "빼어나게 잘생긴 얼굴, 카메라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능력(a strikingly handsome face, chameleon abilities in front of the lens)"으로 꾸준하게 주목받는다.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도나 카란·디젤·베네통의 광고 캠페인의 '얼굴'로 활약하기도 했다. 유혁재는 강하고 남성적인 매력으로 세계 무대에 어필하는 경우. 선이 굵으면서도 순수해 보이는 얼굴로 2012년 토미 힐피거 무대에 등장, 그 이후 돌체 앤 가바나·보테가 베네타·지방시·빅터 앤 롤프 등의 주요 무대를 휩쓸었다. 최근엔 세계적인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과 몽클레어의 광고 캠페인을 찍기도 했다.

모델 전문 에이전시 초이 엔터테인먼트의 최주수 대표는 "이 모델들은 굳이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하지 않고도 혼자만의 역량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게 된 경우"라고 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요구를 재빨리 이해하고 실행할 줄 안다. '지적이면서도 섹시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모델 박성진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키가 그리 큰 편도 아니고(187㎝), 몸매가 좋지도 않지만, 디렉터의 말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하고 몸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옷을 정확히 이해하고 입는다"

모델 김태환(Tae Hwan Kim·22)은 데뷔 1년 만에 파리·밀라노의 13개 런웨이에서 활약한 모델이다. 닐 바렛과 비비안웨스트우드, 디스퀘어드2 등이 그를 메인 모델로 세웠다. 김태환은 본지 통화에서 "우리나라 모델들은 옷을 정확히 이해하고 입는다는 평을 많이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재킷 하나를 입어도 느낌을 온전히 알고 소화해서 입으려고 애쓴다. 쇼의 음악과 분위기, 조명에도 반응하려고 노력한다. 일본·중국, 미국·유럽 모델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다."

필립 림 3.1 패션쇼에서 메인 모델로 활약한 박형섭(Sub Park·23), 런던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버버리프로섬 런웨이 무대에 서서 화제를 모았던 모델 김상우(Sang W F Kim)도 "뭘 걸쳐도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할 줄 안다"는 평을 듣는 경우다.

남성 패션 전문지 에스콰이어의 이현범 패션 디렉터는 "우리나라 남자 모델들은 그 옷의 분위기에 맞춰 눈빛과 걸음걸이까지 다르게 표현할 줄 안다. 인지도가 낮고 신체 조건도 서양 모델보다 좋지 않겠지만, 표현력으로 그 부족함을 메꿀 줄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