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똑~."
13일 새벽 3시 경남 하동 지리산 쌍계사. 목탁 소리가 산사(山寺)의 새벽을 깨운다. 운판(雲版)과 목어(木魚), 법고(法鼓), 범종(梵鐘)이 잇따라 순서대로 울린다. 천지만물을 깨우는 소리다. 구름이 옅게 낀 하늘에서 달은 거의 꽉 찬 모습으로 새벽 예불에 나서는 스님들의 길을 비춰준다. 정월 대보름 하루 전. 이제 음력 10월 보름부터 석 달간 조계종 전국 98개 선원 산문(山門)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화두(話頭) 하나를 붙들고 참선 수행에 정진(精進)해온 2000여 선승(禪僧)은 세상 밖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쌍계사 스님들이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을 드리던 시각, 대웅전 왼편 개울을 건너 108계단을 올라간 산기슭에 자리 잡은 금당선원에서도 17명의 선승이 올해 동안거(冬安居) 마지막 날 정진을 시작했다. 석 달 전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뜻을 가진 금강문(金剛門)과 천왕문(天王門), 그리고 깨달음의 문인 돈오문(頓悟門)을 거쳐 금당선원에 들었던 이들이다.
근대 이후로도 경허 스님을 비롯해 용성 운봉 금오 동산 청담 효봉 스님이 정진한 금당선원은 선승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수행처다. 금당 좌우로 선 서방장(西方丈)과 동방장(東方丈)이 선승들의 수행 공간. 특히 서방장은 좌선하면 기운이 솟구치는 곳으로 유명해 24시간 내내 참선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올 동안거에도 빈자리는 일곱인데, 30명이 금당선원 안거를 신청했다고 한다. 법랍 50년에 가까운 스님부터 올해 법랍 7년인 스님까지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9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두 4차례 2시간씩 평균 8시간 참선했다. 그러나 이는 규칙일 뿐, '참나'를 찾으려는 열정이 넘쳐 서방장뿐 아니라 동방장도 24시간 개방했다고 한다.
4년째 동·하안거가 끝난 후에도 금당선원을 지키고 있는 각현 스님은 "스님 중 한 분은 석 달 내내 장좌불와(長坐不臥·잘 때도 눕지 않고 하는 수행)했으며 사흘씩 잠자지 않고 수행한 분도 여럿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13일 오전 정진을 마친 선승들의 얼굴엔 밝은 환희심이 느껴졌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도 수시로 함께 정진하며 선승들을 격려하고 지도했다.
다양한 수행법이 소개되면서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위기론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산 스님은 단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근기에는 간화선이 최고입니다. '똥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 등 화두를 어렵게 생각하지만 '왜 오늘은 밥이 맛있을까?' 같은 의문도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뭔가 의심이 되는 꼬투리를 끝까지 붙잡고 터득해 깨달은 지혜를 다른 사람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화두요, 삶 자체가 수행이라는 이야기다.
☞안거(安居)
여름(夏)과 겨울(冬) 두 차례 선승들이 석 달씩 선원에 모여 외부 출입을 금하고 참선에 집중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