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 학생! 그래, 제군이 한번 말해보게."

최근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중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한 학생을 가리키며 하는 대사다. 1970년대에 태어난 이 뮤지컬 작가는 '제군(諸君)'이란 말의 뜻이 '여러 명의 아랫사람을 조금 높여 부르는 2인칭 대명사'라는 것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제(諸)'라는 한자 뜻에 '여럿'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쓰지 않을 표현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정규 과정에서 한자를 배운 마지막 세대가 50세를 넘은 상황에서 각종 문화 상품에서도 한자어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판·공연·영화·방송 등을 제작하는 문화계 주 인력층이 한자를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전략에 관한 한 경영서는 '항공모함 함장의 한 마디에 모든 승무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듯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일사분란'이란 말은 없다. '실 한 가닥도 엉키지 않을 정도로 질서가 정연하다'는 뜻인 '일사불란(一絲不亂)'을 잘못 쓴 것이다. 만약 '일사분란(一絲紛亂)'이라면 '실 한 가닥마다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다'는 정반대 뜻이 된다.

한 방송사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소개에는 '유교의 폐혜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문장도 보인다. '폐해(弊害)'를 '폐혜'로, 신랄(辛辣)을 '실랄'로 각각 잘못 쓴 것이다. 유명 출판사가 낸 인문 분야의 한 번역서에는 "발각되어 처벌당하고 명예가 회손되는 것이 두려워"라는 표현이 나온다. '훼손(毁損)'이란 단어를 발음이 비슷한 '회손'으로 잘못 쓴 것이다. '훼방(毁謗·남을 헐뜯어 비방함)'을 '회방'으로 쓰는 예도 심심찮게 보인다.

일상에서 틀리게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사전에 항목으로 오른 단어도 있다. '역활'이란 단어는 '역할(役割)'을 잘못 쓴 것으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아예 '역활(役-)'이란 항목을 두고 ''명사'→역할'이라고 올바른 표준어를 표시해주었다(화살표는 표준어의 뜻풀이를 참고하란 의미). 잘못 쓰는 사례가 너무 많아서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역활'을 검색하면 1200건 넘는 자료가 나올 정도다. 인터넷에선 "'역활(力活)'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해낼 수 있는 능력'이란 뜻"으로 엉뚱한 뜻풀이가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역활(力活)'이란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