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천호동에 사는 주부 장경순(49)씨는 두 달 전부터 초인종 소리만 들으면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다. 밤이고 낮이고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장씨는 "처음엔 동네 어린아이들 장난이려니 했는데 최근엔 벨 소리에 놀라 나가보려 하면 여러 명이 몸으로 문을 막고 서 있어 너무 무섭다"고 했다.
최근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각종 '튀(도망치기)' 카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초·중·고교생들이 이 '튀' 카페에 가입해 '택튀(택시비 안 내고 도망치기)' '계튀(날계란 던지고 도망치기)' '돌튀(돌 던지고 도망치기)' '욕튀(욕하고 도망치기)' 등 범죄 수준의 장난을 치고 도망가는 것이다. 장씨가 당한 일은 '벨튀(벨 누르고 도망치기)'와 '문막(문을 열지 못하게 하고 도망치기)'이었다.
네이버에는 '벨튀'라는 이름이 들어간 카페만 130개가 넘었다. 이 중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카페는 '벨튀공화국'이라는 카페로 하급·중급·상급·최상급 등 단계별 '벨튀 강좌'와 '인증 동영상' 등이 올라와 있었다. 또 다른 카페에는 "'문막'이 잘 안 되면 현관에 본드칠을 하거나 절연테이프를 바른 뒤 벨을 누르고 도망가라"는 자세한 지침까지 올라와 있다. '벨튀컵'이라는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는데, 이는 누가 더 기상천외한 행각을 벌였는지를 겨루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시민들은 극도의 정신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인천에 사는 주부 김효미(38)씨의 아들(6)은 1월 초 '벨튀범'이 문 앞에 두고 간 산산조각이 난 소주병 때문에 발을 심하게 다쳤다. 김씨는 "그 이후로 누가 밖에 지나가는 소리만 나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귀갓길에 '욕튀'를 당했다는 대학생 정은지(여·24)씨는 "어두운 길에서 누군가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쏟아내고 도망치니 무서워서 다시는 그 길을 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카페를 단속하기가 쉽지 않고 범인 검거도 어렵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적으로 이런 행위들은 사기죄(택튀)·모욕죄(욕튀)·재물손괴죄(현관문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 등에 해당하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카페에 올린 글만으로는 단속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벨튀' '택튀'를 하는 청소년들은 친구들에게 '내가 굉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영웅 심리가 인터넷과 만나 나날이 더 큰 범죄를 조장하고 있는데, 조기(早期)에 교정하지 않으면 성인기에도 자기 행동을 반성하지 못하고 범법 행위를 저지르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