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윤가이 기자] '김수현(金秀賢)'이란 이름의 거장과 거인이 있다. 스타작가 김수현과 톱 배우 김수현이다. 두 사람이 대한민국 안방극장을 호령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 분야도 다르고 세대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TV 앞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긴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런 흥미로운 우연이 있나.

먼저 김수현 작가는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통해 녹슬지 않은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방송 초반만 해도 시청률 부진으로 쓴 소리를 들었다. 시청률 40%, 50%를 훌쩍 넘는 국민드라마를 다수 배출한 김 작가가 어떻게 두 자릿수 시청률도 힘든 지경에 빠졌냐는 반응들이 나왔다. 김수현식 가족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 사이 일부 아쉬운 평들도 보였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면서 촌철살인 대사에 여타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감하고 특이한 캐릭터와 관계도, 거기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감동과 메시지는 역시나 빛을 발했다. 이것이 '거장' 김수현 드라마의 독창성이자 흥행 비법 아닌가. 초반 이지아를 비롯한 일부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비난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배우들은 촘촘한 대본과 감각적인 연출 속에서 겉도는 이 없이 어우러졌다. 초반 일각의 우려와 비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벌써 몇주째 자체최고시청률도 경신했다. 동시간대 MBC '황금무지개'가 바싹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배우 김수현은 '거인'이다. 많지 않은 경험과 작품 숫자와는 별개로 그는 매 작품 훌쩍 자라나고 있다. 비약적인 성장의 결과 그는 단 한 번도 실패를 허용하지 않은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그가 열연 중인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동시간대 압도적인 1위 독주를 계속하고 있다.

김수현의 연기는 물이 올랐다. 날개를 달았다. 극중 지구에서 400년을 산 외계인 도민준으로 분한 그는 전작들에서 보여준 적 없는 또 색다른 캐릭터로 여심을 훔쳤다. 대개 경험이 부족한 신인들이나 초보 배우들이 저지르기 쉬운 감정 과잉의 연기도 그에게선 찾을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이번 캐릭터에서 절제의 미학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 방송분에서는 그동안 아껴왔던 감정을 폭발시킨 오열 연기를 토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무서운 배우다.

놀라운 사실은 김 작가나 김수현 두 사람의 나이다. 김 작가는 무려 1943년 출생으로 일제강점기를 몸소 경험한 인물이다. 그에게서 연륜이나 내공이 드러나는 것은 도리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시대의 격변과 트렌드의 진화 속에서 꿋꿋이 그 심지를 잃지 않고 있단 사실은 놀랍다. 올해 70세인 이 노년의 작가는 여전히 파격적이고 시대를 주도하는 스토리를 풀어가면서도 그 속에서 불변의 진리를 퍼 올린다. 그 역량과 열정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거장이다.

김수현은 이제 갓 20대 중반에 들어선 열혈 청춘이다. 단순히 나이만 놓고 본다면 그다지 급할 것도 깊을 것도 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막 소년에서 남자로 들어선 이 배우가 연기하는 세계는 넓고 크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탁월하다. 또래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내공과 노련함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은 물론 같은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혀를 차게 만드는 압도적인 연기력은 '거인' 김수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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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제공(오른쪽 위), '별에서 온 그대' 캡처(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