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2013년11월19일부터 12월26일까지 '서울보다 행복한 지방 강소도시들'이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번 시리즈는 소득수준이나 생활 인프라 등에서 서울이 부럽지 않은 지방의 잘 사는 도시들의 모습을 집중 취재해 보도함으로써 달라진 대한민국의 모습을 조명하는 한편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주요 과제의 해법을 제시했다.

조선일보는 시리즈를 마치면서 해당 지자체들이 어떻게 강소도시가 됐는지 단체장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단체장들을 통해 강소도시로 성장한 비결과 함께 2014년 새해의 포부를 들어본다. 편집자

송하진 전주시장… 전통문화 부자도시 비법은 선택과 집중 

'도시재생' 일궈낸 한옥마을 작년 508만명 발길
'블루오션' 탄소소재 산업 개발로 놀라운 성과… 사업 성공 뒤엔 주민과 깊은 대화·교감 있어

송하진 전주시장은“모든 사업은 인내를 갖고 깊은 대화와 교감이 필요하다. 주민들과 교류하며 시장의 확신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전주가 더는 밀려날 수 없었어요.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서 그 자산을 풀 가동, 도시 특색과 강점을 최대한 발현시킨 겁니다."

전북 전주 구시가지 스카이라인은 반세기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전라선 철도를 외곽으로 옮기고(1981년) 연초제조창을 헐면서(2006년) 그곳에 업무빌딩과 아파트를 세운 것 말고는 이렇다할 변화가 없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정체돼 개발 수요가 적었기 때문이다. 송하진(61) 전주시장은 "역설적으로, 전주는 개발 급물결에서 비켜 있어 한옥마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전주는 산업화에 뒤졌기에 전통문화 부자 도시가 됐다. 시는 구시가지를 갈아엎지 않고 공동체를 보전하면서 역사·문화자산을 고스란히 활용해 한옥마을을 살려냈다. 이른바 '도시재생'이었다. 각박해진 문명세태에 사람들은 힐링을 갈구했다. 회색 콘크리트 도시에서 자란 신세대에게 옛 것은 새 것이었다.

전주시가 '선택과 집중'으로 일궈낸 한옥마을엔 지난해 508만명이 찾았다. 이 마을 상가는 3년 새 100여곳에서 305곳으로 늘었다. 전주대 산학협력단은 작년 이곳 상가 매출만 458억원, 직·간접 경제효과가 2680억, 유발고용이 3600명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송 시장은 '도시재생'을 구도심 상권 등 구시가지로 확대하면서 도시행정의 새 모델로 만들었다. 한국적 요소에 현대 감각을 가미해 가로와 건물들을 새로 디자인했다. 구시가지 광장들도 산뜻하게 리모델링됐고, 포장마차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도심 '걷고 싶은 거리', '영화의 거리'와 '비보이 광장' 등은 젊은이 물결로 활기를 찾았다. 전주는 '아트폴리스(art-polis)'로 거듭났다.

탄소소재 산업은 전주가 개척한 블루오션(blue ocean)이었다. 송 시장은 "정부가 관심을 갖기 전 전주에서 설계와 연구개발을 거쳐 생산 궤도에 진입시키고 연관 산업을 유치하면서 인력공급 체계까지 갖춰 전주의 독보적인 산업으로 세울 수 있었다"고 했다. 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효성과 제휴, 국내 처음 고기능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효성은 1단계로 연간 2000t을 생산할 공장을 지난해 완성, 양산에 나섰다. 벌써 응용제품 업체 20곳이 입주한 가운데, GS칼텍스도 올해 탄소섬유 새 소재를 시험생산, 내년부터 상업생산키로 시와 협약했다. 100개 관련 기업이 집적될 2020년이면 이 분야 종사자는 6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전주 한옥마을과 구도심이 빛을 내고 탄소산업이 기반을 닦기까진 난관도 많았다. 한옥마을에 건축·차량통행 등 규제를 가할 때도, 도심 노송천 복개구조물을 걷어낼 때도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상가에선 하루 수입을 걱정했고, 일부 공무원마저 '긁어 부스럼'이라며 불안해 했다. 효성 입주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땅 주인들은 소송까지 냈다.

"사업마다 인내 속에 깊은 대화와 교감이 필요했습니다. 주민의 말에 귀기울여 공감해주면서 시장의 확신을 심어줘야 했어요."

송 시장은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가수도 히트곡이 없으면 무대에 못 선다. 전주가 돈 벌려면 히트작을 내야 한다"고 설득하곤 했다. 특혜와 전시행정 시비들도 사업이 성과를 내고 단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수그러들었다. 송 시장은 매사 현장에 나서는 스타일이다. 부드럽고 친근하게 설득하는 CEO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주는 '얼굴 없는 천사'가 노송동에 다녀가야 한 해가 저문다. 세밑과 명절이면 구청·주민센터에 익명 기탁이 이어진다. 작년 초 효성이 부지 확보에 난항을 겪자 '탄소천사' 30여명이 이 사업에 보태라며 모두 1억여원을 기탁했다. 익명의 기부로 대변되는 숨은 온정과 지역 발전 염원은 전주 발전의 또다른 원동력이라고 송 시장은 말한다. 전주 구시가지엔 국립무형유산원,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지원센터가 새로 들어서 시험 운영되고 있다. 송 시장은 "덕진공원을 물과 숲, 흙과 돌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자연생태 정원으로 조성하겠다"며 그 밑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상림동에 쓰레기 매립·소각장에 이어 자원 리싸이클링타운이 들어서면 전주에선 인문과 자연생태, 환경·자원재생 공간이 트라이앵글로 어울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문동신 군산시장… 일자리·교육 챙기니 생기가 돌더라 

건축·환경 등 12개 부서 기업유치 TF팀 가동
초스피드 인허가, 취임 3년 만에 400개社 입주… 교육 예산 236억 확대, 명문대 진학 두 배로 늘려

지난해 한국공공자치연구원으로부터‘올해의 지방자치 CEO’로 뽑힌 문동신 군산시장.

문동신(75) 전북 군산시장을 시 공무원들은 '60고(顧)의 시장'으로 소개하곤 한다. 문 시장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를 유치하며 60여 차례나 본사를 찾았다. 이를 유비가 제갈량을 맞기 위해 쏟은 삼고초려의 정성에 비유한 것이다. 문 시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모델을 제시, 16번이나 중앙 공무원 특강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가 내건 군산의 슬로건은 '50만 국제관광기업도시'다.

1998년 이후 군산은 인구가 매년 2000명 안팎씩 줄고 있었다. 그는 민선4기 시장 취임 첫 해인 2006년 10월 시민이 왜 떠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49%가 '일자리', 44%가 '열악한 교육환경' 이란 응답이 나왔다. '기업도시'와 '교육도시'는 그래서 그가 취임 초기부터 내건 기치였다.

"울산도 40여년 전 인구 11만에서 출발했어요. 우리라고 못합니까."

군산엔 산업단지 2840만㎡가 조성돼 있었으나 태반이 비어 있었다. 문 시장은 시청 내 건축-환경 등 12개 부서로 기업유치 TF팀을 구성했다. 기업 인허가와 관련된 군산해양항만청·한전 등 10개 기관도 한 지붕(원루프·one roof) 아래로 모았다. 초스피드 인허가로 2007년 10월 군산조선소는 통상 2주일 걸리는 건축허가를 하루만에 받았다. 그는 취임 3년만에 400여 기업을 유치, 산업단지 땅을 바닥내버렸다.

군산시는 2012년 이후 원룸 등 18채를 빌려 집을 못 구한 새 근로자(45명)에게 무료 제공한다. 산단 출퇴근 전세버스도 15개 노선에 무료 배치했다. 문 시장은 "원루프 아래 기업 애로의 90% 이상 해결되며, 여기서 안되면 도와 중앙부처에 도움을 요청해 해결한다"고 했다.

기업 입주로 일자리가 늘자 군산 인구는 2007년 말 26만562명에서 이달 초 27만8366명으로 약 1만8000명 증가했다. 군산은 연간 전북 제조업 매출(10조6620억원·2011년)의 40%를 차지하지만 기업 입주가 완료돼 풀가동하면 그 비중이 더 커지고 일자리 3만개쯤이 더 생길 전망이다. 그 기대를 반영, 군산의 2009년 땅값 상승률은 전국 지자체 중 최고(9.1%)를 기록했다.

문 시장은 교육 지원 예산을 2006년 33억원에서 작년 236억원으로 늘렸다. 시 교육발전진흥재단 기금 207억원을 확충하며 시장 관사를 서울 종로학원 강사 7명의 숙소로 내놓기도 했다. 종로학원 강사진은 2007년부터 군산 우수 교사들과 함께 시내 8개 고교생 240명에게 금·토 특강을 펼친다. 매년 40여명이던 군산의 명문대 및 의대 진학자가 이제 80명 안팎이다. 시는 관내 고교로 진학하는 우수 중학생들에게 800만~350만원씩 장학금도 지급해왔다.

취임 직후인 2006년 여름 직도사격장 사태는 그의 첫 시험대였다. 매향리사격장 폐쇄 후 제대로 사격훈련을 못해온 미(美)공군이 군산 앞바다 직도에 대체시설을 갖추려 하자, 반미단체는 물론 일반 시민과 시의회까지 거세게 반발했다. 문 시장은 국방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시민을 설득하며 정부엔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다. 정부로부터 고군산연결도로 등 11개 사업(3216억원)을 약속 받은 뒤, 시설을 허가했다. 민노당 의원들의 거친 항의에 "국가가 안전해야 지역발전이 있다. 시장이 책임진다"고 맞받았다. 군산이 최근 밀양과 달리 외부 개입 없이 새만금 송전선로 갈등을 푼 데도 그의 막후 노력이 있었다.

글로벌 불황으로 조업률이 60%까지 떨어졌던 군산산단은 경기회복과 함께 기지개를 펴고 있지만, 한국지엠 및 협력업체들은 아직 가동률이 절반에 그친다. 문 시장은 27개 읍면동에 나설 때마다 "기업이 잘 돼야 지역이 산다"며 한국지엠차 사주기 운동을 벌여왔다. 그 자신부터 취임 후 그 차만 탔다. 한국지엠차 군산 판매점유율은 31%에 이른다.

충남 서천은 금강하구둑에 해수를 유통하자며, 전북 김제-부안은 해상경계와 다르게 새만금 행정관할을 정하자며 군산과 맞서고 있다. 문 시장은 "새만금 중심 행정광역화가 주민 편익과 수월한 개발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는 작년 말 한국공공자치연구원으로부터 '올해의 지방자치 CEO'로 뽑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