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저를 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마치 '본드를 만들지 마세요'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2012년 2월 소년 사건 전담 재판을 맡게 된 인천지법 심재완(39·연수원 33기) 판사는 본드를 흡입하다 재판에 넘겨진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고 한다.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본드를 만드는 건 어른들이고 청소년들은 오히려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통계부터 찾아봤다. 직전에 근무한 춘천지법에서는 청소년 본드 흡입 사건이 거의 없었는데 인천에서는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본드 흡입으로 인천지법에 들어온 사건은 지난 2010년 총 205건으로 전체 소년보호사건(4027건)의 5%쯤 됐다. 다른 지역은 1%대에 불과했다.
본드 흡입을 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게나 철물점 등에서 쉽게 살 수 있는 A사의 작은 공업용 본드를 사용했다. 공업용 본드에 포함된 톨루엔이 환각 작용을 일으키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규제는 없다고 한다. 과거 청소년 본드 흡입이 크게 사회문제가 됐을 때 당시 해당 회사는 톨루엔을 자체적으로 다른 물질로 바꿔 현재는 유해하지 않다. 그런데 후발 업체인 A사는 재료비 등을 이유로 톨루엔을 그대로 사용해 온 것이다.
2012년 11월 심 판사는 인천보호관찰소 직원 등과 함께 충북에 있는 A사의 공장을 찾아갔다. A사 측은 "우리와 하청업체가 다 망하면 판사님이 책임질 거냐"고 반발했고, 심 판사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에 대한 문제"라고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 판사의 끈질긴 요구에 A사는 인천지역엔 더는 본드를 납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심 판사는 국회, 기술표준원, 인천지역 철물점 등을 찾아다니며 환각 물질의 시중 유통 제재에 대해 구체적인 협조를 구하고, 본드 중독을 경험한 청소년들과 포럼을 갖거나 시민결의대회를 열어 본드 중독의 심각성을 알렸다. 심 판사 등의 노력 덕분에 인천지법에 접수된 청소년 본드 흡입 사건은 2011년만 해도 한 달 최고 57건까지 접수됐으나,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 넉 달 사이엔 4건만 접수됐다.
심 판사는 "본드에 중독된 학생들의 초점 없는 눈빛을 보면 누구라도 가만히 있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주위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