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가 11~12일 임원과 지부 대표 등 500명이 모인 가운데 '파업 출정식'을 갖고 진료 거부 같은 집단행동을 벌일지 논의한다고 한다. 철도 파업이 간신히 진정됐는데 이번엔 의료 대란(大亂)이라는 더 심각한 혼란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간다면 2000년 의약 분업 시행 때의 집단 폐업에 이어 14년 만의 일이다. 당시 전국 병·의원이 두어 달 간격으로 며칠씩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일로 의사협회 지도부가 줄줄이 구속됐고, 정부는 의료계를 무마하려고 세 차례 건강보험 수가(酬價)를 인상해야 했다.
지금 의료계의 표면적 주장은 원격진료와 영리(營利) 자회사 도입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노인·장애인이나 오지·섬 주민들이 병·의원을 찾지 않아도 진단을 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원격진료가 활성화되면 지방 중소 병·의원들은 환자 감소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원격진료 도입이 의료계의 격렬한 반발을 억지로 누르면서까지 서둘러야 할 화급한 사안인지 좀 더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법인에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자는 것은 경영난을 겪는 지방 병원들에 수익 창출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조치다. 그러나 의사가 자기 병원 자회사가 생산하는 의료용품·건강식품을 권할 경우 환자가 거절하기는 어렵다. 그 경우 환자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의료계가 논의해 의사의 부당한 강매(强賣) 같은 부작용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봐야 한다.
원격진료나 영리 자회사 문제는 대형 종합병원과 지방 중소 병원, 동네 의원 사이에 이해타산이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전국 모든 의사와 모든 병·의원이 한목소리로 들고일어날 쟁점으로 보긴 힘든 것이다. 또 의료계의 사활적(死活的)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부가 시행 과정에서 의료계 의견을 반영해 얼마든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가 진짜로 요구하는 것은 의료 수가를 올려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의료 수가가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은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환자들에게 찍을 필요가 없는 MRI를 찍도록 권한다든지 해서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 항목을 억지로 늘리는 경향이 있다. 대형 병원들은 장례식장·주차장을 운영해 환자 진료에서 보는 손해를 벌충하려 들기도 한다. 정부가 오랫동안 제약 회사와 병원 간 음성적 리베이트 관행을 묵인해왔던 것도 낮은 수가에 묶여 있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2010년부터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도 제약 회사와 함께 처벌하는 쌍벌죄(雙罰罪)가 시행돼 의사들이 지금의 저(低)수가를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수가를 올리든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든 일반 국민의 부담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더 많은 이익을 따내겠다고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을 하게 되면 여론이 의료계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원격진료나 영리 자회사, 수가 인상 등 현안은 정부와 의료 단체들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다면 얼마든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힘부터 과시하고 나면 국민과 의료계 사이에 해소하기 힘든 감정의 앙금이 생겨버린다. 그러고 난 다음엔 의료계 입장을 관철하기가 지금보다 몇 배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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