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유럽은 극우·극좌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독일은 1950년대 나치주의와 공산주의를 각각 내세운 사회주의제국당(SRP)과 독일공산당(KPD)을 강제해산했다. 그 사이 중도 좌·우파 정당들은 권력을 분점하며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계를 오가는 전후(戰後) 정치 질서를 만들어 왔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 독일은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 프랑스는 국민연합·공화국연합·대중운동연합 등 보수당과 사회당이 정치를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경제 위기와 빈부 격차, 이민자 증가 등으로 급진적 주장을 내세운 극우·극좌파가 정치 무대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극우 '민족주의·反이민' 연대

"2014년은 마린 르펜(46)의 해가 될 것이다." 프랑스 정치평론가 겸 작가 에릭 제무르(56)가 새해를 시작하며 내놓은 정치 전망이다. 올해 프랑스에선 3월 지방선거, 5월 유럽의회 선거가 이어진다. 이 선거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돌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1972년 창당한 국민전선은 200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한 적이 있지만, 현재 의회 의석은 2석에 불과하다.

그리스 극우 세력인 황금새벽당 지지자들이 2012년 6월 테살로니키시(市) 당사 밖에서 의회 300석 중 18석을 차지했다는 총선 결과 공식 발표 영상을 보며 자축하고 있다. 유럽 정계는 중도 좌·우파가 안정적인 경쟁 체제를 이뤄왔으나, 경제 위기와 이민자 증가로 극좌·극우 세력이 지지 세력을 불려가는 양상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실시한 유럽의회 선거 여론조사에서 사회당과 대중운동연합(UMP)을 제치고 지지율 24%로 1위를 기록했다. 지방의회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유권자의 42%가 '국민전선에 투표하거나 투표할 마음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스에선 극좌파 시리자(Syriza)가 지난달 현지 일간 토 비마가 실시한 자국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지지율 22.5%로 집권 신민당(21.7%)을 누르고 1위를 기록했다. 시리자는 2012년 총선에서 반(反)긴축을 앞세워 제1야당으로 부상했으며, 이젠 집권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극우 정당인 네덜란드의 자유당과 핀란드의 진짜핀란드인당은 자국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와 반(反)이민을 내세워 보수 성향 유권자를 공략하고 있다. 특히 최근 극우파는 인종차별적 요소 등을 완화하고 1930년대 파시즘(전체주의)과 거리를 두면서 젊은 층을 파고들고 있다.

극좌 "反긴축, 빈부 격차 해소"

유럽 극좌파는 반(反)긴축과 빈부 격차 해소를 내걸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적군파에 뿌리를 둔 그리스 시리자는 대외 채무 상환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좌파전선(FG)은 대량 해고 금지와 급여 제한 등 공약을 내세워 201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1%를 기록했다. 고정환율제 등을 주장하는 덴마크 적록연합은 좌파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유럽 통합 대신 EU 해체 목소리

영국 보수당은 지난해 11월 발칵 뒤집혔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부동산 재벌 폴 사이크스(71)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 영국독립당(UKIP)을 후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극우·극좌파의 득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추진하고 있는 유럽 통합 작업에 급제동을 걸고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통합을 통해 민족·국가 간 갈등을 없애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물이 28개 회원국을 거느린 EU다. 반면 극우·극좌파는 EU 해체를 통해 국가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을 대외 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