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1944년 6월 6일, 연합군 병력 총 100만명이 투입된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된다. 험악한 날씨로 유명한 영국 해협을 건너 수많은 독일군이 지키고 있는 해변에 상륙한다는 이 '오버로드 작전'. 정말 위험천만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륙작전을 계획했던 아이젠하워 사령관과 몽고메리 장군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를 알고 있었기에 이 무모한 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다. 바로 독일군이 노르망디가 아닌 영국과 더 가까운 칼레에서 연합군 상륙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비밀 유지는 전쟁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세계 최고 암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에니그마(Enigma)'라는 암호기는 실질적으로 판독하기 불가능해 보였다. 무려 158×1018 조합이 가능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암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니그마의 비밀은 밝혀졌고, 노르망디 상륙 당시 연합군은 독일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 '불가능한' 일을 누가 해낸 것일까? 바로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Turing) 이었다. 에니그마의 기본 암호 구조는 라제브스키, 로진키, 지갈스키 같은 폴란드 수학자들을 통해 2차대전 전 판독됐다. 문제는 실질적 판독을 위한 천문학적 계산량이었다. 하지만 튜링은 콜로서스(Colossus)라는 세계 최초 컴퓨터를 개발해 드디어 에니그마의 메시지를 판독하는 데 성공한다.

에니그마 판독 없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2차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을 수 있다. 로버트 해리스(Harris)의 '대체 역사' 소설 '파더랜드'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 연합군의 승리 없이 우리는 여전히 '대일본제국'의 2등 시민으로 일왕을 섬기고 아베 신조 총리 밑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런 튜링이 판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에니그마’.

독일과 일본의 세계 정복 망상에서 우리를 구해준 튜링 자신의 삶은 하지만 비극적이었다. 당시까지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연애자였던 튜링은 2차대전 후 체포당하고 화학적 거세를 당한다. 미국 입국이 금지되고 더 이상 국가 안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된 튜링은 1954년 자살을 선택한다.

2013년 12월 영국 왕실의 특별 지시로 튜링은 사후 사면됐다. 체포당한 지 60년 만이다. 튜링의 삶과 업적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남녀,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유대인, 모든 사람이 다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 왜 우리는 모든 사람은 꼭 나같이 살아야 하며, 나같이 살길 거부하는 사람은 차별과 원망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인간의 뇌는 독립적 개인으로 구성된 성숙한 사회가 아닌 외모·사상적으로 동일한 클론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