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 18일 대한민국인재상 수상자 100명을 대상으로 시상식을 거행했다. 맛있는공부가 이 중 눈에 띄는 청소년 세 명을 만났다.
남은채_ 수시로 강의 청취… 암 이기고 전교 1등
'림프종'은 림프계에 발생한 암(癌)으로 백혈병과 함께 대표적인 혈액암으로 꼽힌다. 중 1때 림프종 판정을 받은 남은채(서울 백암고 3년)양은 중학교 3년을 항암치료로 날려버렸다. 혼자 병원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외로움이 몰려왔다. 공부는 이를 물리칠 좋은 수단이었다. "틈날 때마다 EBS 강의를 들었어요. 시험 기간 땐 꼭 학교에 나가 양호실에서 혼자 시험을 치렀고요. 그랬더니 2학년 2학기 땐 시험 성적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어요. 중 3 마칠 무렵엔 항암치료를 그만둘 수 있게 됐고요."
고등학교 땐 약 없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몸 상태가 호전됐다. 하지만 다른 수험생보다 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긴 매한가지였다. 매일 밤 11시만 되면 체력이 달려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 때문에 남양은 "학교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성적을 관리했다. 이를테면 쉬는 시간엔 금방 풀이가 가능한 수학 문제를 풀며 자투리 시간을 쓰는 식이다. 각종 비교과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학내 소논문 쓰기 대회에 참가했고 미래한국아이디어공모전(KDI주최) 참여 등을 통해 관심사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소년에게 "힘들 땐 '잔잔한 바다에선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을 떠올리며 힘을 내라"고 조언했다.
정성하_ 유튜브 기타리스트… 7억뷰 비결은 성실함
정성하(17)군은 초등 고학년 때 '캐논 변주곡' '캐리비안의 해적 OST' 등을 기타로 연주한 동영상으로 '유튜브 스타'가 됐다. 그가 동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jwcfree) 게시물들의 조회 수 총합은 7억건을 웃돈다. 이 같은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 영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공연을 펼친 게 벌써 6년째다. 그는 "공연하러 다니며 세계가 넓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고 말했다. "외국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비교적 많은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공연 투어를 다니며 친해진 호주 기타리스트 토미 엠마뉴엘(58)은 1년 중 300일을 무대에서 보내요. 관객층도 다양합니다. 핀란드나 프랑스에선 할아버지, 할머니도 제 공연을 즐기러 오시죠. 이처럼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 한층 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정군은 공연과 앨범 발매 등의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의 남다른 선택 뒤엔, '대학 진학은 행복 보증 수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아버지 정우창(45)씨의 지지가 있었다. 검정고시 합격 이후 정군은 자기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침마다 미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며 영어 공부에 나섰고 유명 기타리스트에게 레슨을 받으며 연주 레퍼토리를 갱신한다. 매주 한두 번씩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리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제 인기 비결은 '성실함'이에요. 저처럼 팝부터 뮤지컬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꾸준히 기타 버전으로 편곡하고 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기타리스트는 전 세계적으로도 몇 없거든요."
김재원_ 예술·과학 아우르는 인재
김재원(경기과학고 3년)군은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일명 '융합형 인재'다. 그는 이번 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합격했으며 올 7월엔 국제물리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비단 물리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엔 교내 작곡 동아리 '메나니'가 발매한 앨범에 김군의 자작곡이 수록됐다. 고교 시절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실험실 인턴으로 일할 땐 화학적 지식이 필요한 연료전지 연구를 진행했다. 초·중학생 시절엔 충남대 과학영재원에서 수학 심화과정을 수료했다.
이처럼 김군이 다양한 관심사를 펼친 데엔 독서의 힘이 주효했다. 김군의 부모는 아이가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한꺼번에 책을 사주지 않았다. 이를테면 스무 권짜리 시리즈 중 무작위로 두 권만 골라 구매하는 식이다. 방학을 이용한 가족 여행 역시 공부에 도움이 됐다. "중학생 때 성적이 좋지 않아 한창 슬럼프에 빠질 무렵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떠났어요. 첫날 새벽 네시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 한시까지 걸어 지리산을 정복했죠. 멈추고 싶을 때마다 '조금만 더'라고 되뇌며 발걸음을 옮겼더니 언젠간 목적지에 다다르더군요. 이날 이후 공부하다 힘들면 지리산 종주 경험을 떠올리며 힘을 얻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