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의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가 내한했다. 라이언 맥긴리는 특유의 감각적인 사진 작품을 통해 청춘의 1만 가지 감정을 표현해왔다. 때로는 술과 약에 취한 파티장의 젊은이들, 키스를 나누는 동성애자도 피사체로 등장했다. 10대들의 불안과 방황, 탈선을 포착한 사진은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관심과 화제의 대상이었다.

2003년 24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단독 전시를 연 이후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 중인 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진작가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를 만났다.

청춘을 담아내다

이날 징 박힌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라이언 맥긴리는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기자회견 단상 위에 올랐다.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늘 한 템포 멈춰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 이 패셔너블한 젊은 사진작가의 선글라스 너머로 예리한 눈매를 느낄 수 있었다. 기자회견 내내 그는 기자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았다.

“제게 ‘청춘’은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낙천과 자유를 의미해요. 제 사진 속 모델 중 상당수가 스스로를 예술가, 즉 화가이고 작가이고 음악가라고 생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개방적인 반면 상처받기 쉬운 면도 지니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 저는 사진을 찍는 데 매우 중요한 감정적 접근을 느낍니다.”

유리알처럼 깨지기 쉬운 청춘은 맥긴리의 사진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사진 속 피사체는 자유롭고 어딘지 모를 해방감을 안겨준다. 연출된 포즈가 아닌 순간의 포착, 그것이 맥긴리가 작업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자유로운 상태로 있도록 놔둡니다. 제 사진은 영화처럼 대본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할 뿐이에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는 정말 특별한 사진이 나오죠.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의 사진이 나옵니다.”

물론 우연한 사고 뒤엔 준비된 장치도 공존한다.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도 필수다.

“인물의 즉흥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외 촬영에 필요한 제반 사항은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에요. (사진이)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보인다고 해서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도 꼭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런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죠.”

이 같은 청춘의 단상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제 작업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어린 시절 을 즐겨 읽었어요. 모험을 즐기고, 도전하는 것이 곧 제가 하는 작업이기도 하죠. 주로 젊은이들을 찍는 이유는 그들의 태도가 다소 반항적일지라도 ‘일단 저질러보자!’와 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에요. 청춘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자유로움, 실험 정신, 모험을 담고 싶었습니다.”

나체를 찍다

맥긴리의 작품에서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은 인물을 찾기란 어렵다. 주로 나체를 담았기 때문이다. 사진 속 모델은 종종 들판과 터널, 기찻길과 해변가에서 나체인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렇다고 ‘야한’ 사진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비쩍 마른 피사체는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 하나의 피사체에 불과해 보인다.

“사람의 몸은 제 흥미를 자극하는 소재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당신 앞에 나체로 서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자연스레 그 사람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지 않겠어요?(웃음) 구체적으로는 살결의 느낌과, 빛이 몸 위에서 부서져 내리는 방식을 사랑해요. 제가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누드 자체보다 사람들의 벗은 몸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감정입이다. 사진 속에 나체가 융화되는 순간을 마치 일상의 한 장면처럼 포착해내려 하죠.”

나체를 ‘일상의 한 장면’처럼 담아낼 수 있었던 데에는 튀지 않으면서 평범한 피사체의 역할도 크다. 모델을 선택하는 맥긴리만의 기준은 무엇일까.

“주로 아티스트들을 선택합니다.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이라야 감정 교류가 가능하거든요. 예컨대 음악은 제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죠. 그래서 제가 찍는 많은 이들이 뮤지션이거나 화가, 조각가 또는 작가예요.”

‘(감정 교류가 가능한 예술가) 모델’의 ‘벗은 몸’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과 함께 삼박자를 이룬다. 색감 면에서 그의 사진은 주로 파스텔 톤으로, 필름 카메라의  질감이 뚜렷하다.

“주로 해 뜨기 2시간 전, 해 지기 2시간 후에 작업합니다. 저는 이때를 ‘매직 아워’라 불러요. 특히 해 뜨기 전 새벽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은 다른 시간에 작업한 결과물과 분명 다릅니다.”

시골 촌놈의 뉴욕 입성기

미국 뉴저지의 램지라는 작은 동네에서 태어난 맥긴리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10대 시절은 거칠 것 없이 자유로웠다. 그는 자신이 “반항아였다”고 기억했다.

“어머니는 제가 거리의 아이들 중 한 명이 되지 않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저는 편의점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낯선 사람에게 술을 사달라고 하며 지저분한 도로변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걸 즐기는 아이였죠. 때로는 친구네 집 지하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스매싱 펌킨스의 음악을 들으며 놀았어요.”

열세 살이 지나자 뉴저지에서 뉴욕까지 매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오가던 그는 결국 ‘뉴욕 입성’에 성공한다. 세계 3대 패션스쿨인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닌 맥긴리는 입학한 첫 해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전액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 망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뉴욕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단지 수업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교육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저는 학교에서보다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어요.”

뉴욕에서도 그는 ‘거리’를 더 사랑했다.

한국은 아버지의 기억이 담긴 나라

라이언 맥긴리에게 한국은 낯설고도 익숙한 나라다.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소 의외의 답변을 내놓은 그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예요. 그래서 이번 한국 방문이 매우 떨렸습니다. 아버지 몸에 8개의 총상이 있는데, 어린 시절 제가 그걸 만질 때마다 한국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런 그가 한국에 오자마자 방문한 곳은 뜻밖의 장소.

“가장 먼저 용산전쟁기념관을 찾아갔어요. 그 밖에 서울에 대한 첫인상은 사람들이 굉장히 패셔너블하다는 것?”(웃음)

20대 초반에 데뷔한 라이언 맥긴리도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젊지만 청춘을 담는 작가인 만큼 나이에 대한 불안은 없을까.

“청춘은 물리적인 나이가 아닌 정신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관심, 호기심, 실험정신, 오픈마인드, 질문, 저항이 제게는 청춘이죠. 정해진 길에 안주하는 삶을 경계하며 늘 오픈마인드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러니 (나이 듦은) 걱정하지 않아요.”

[- 자세한 기사 전문은 여성조선 12월호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