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 범인이자 류원기(66)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68)씨는 11년 전인 2002년 3월, 당시 이화여대 법학과에 다니던 하지혜양을 청부 살해했다.
23세의 꽃다운 나이였던 하양은 공기총으로 여섯 발의 근접 사격을 받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곧 윤씨에 대한 사법적인 단죄가 이어졌다. 가해자인 윤길자씨는 끝까지 형량을 줄이려고 ‘돈의 힘’에 의지했지만,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감옥에 갇혔다. 이 사건은 그렇게 과거 속으로 묻히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올해 한 방송사에 의해 재조명됐다. 윤길자씨가 감옥이 아닌 세브란스병원 특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허위 진단서를 근거로 2007년 이후 5차례나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김씨는 무려 6년간이나 이 같은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결과, 담당 주치의인 박병우씨가 윤씨의 남편인 류원기 회장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고 허위 진단서를 세 차례에 걸쳐 발급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류 회장 역시 빼돌린 회사 돈 87억여원 중 일부를 윤씨의 형집행정지를 위해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결국 구속됐다. 현재 서울서부지법에서는 이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이다.
윤길자씨는 다시 교도소로 갔다. 이번 일로 호되게 비판을 받은 검찰은 뒤늦게 ‘형집행정지’ 절차를 강화하는 등 개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윤씨에게 형집행정지를 허가한 검찰의 책임에 대해서는 검찰이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인 하지혜양의 유족들은 이와 관련, ‘시사저널’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에 검찰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이 부분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가면 국민적 지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이 사건과 관련,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류원기·윤길자 부부의 ‘이혼설’과 관련한 의혹 때문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윤씨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후 이혼했다고 전해졌고, 그 이후 언론에서도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전(前)남편’ ‘전부인’ 등으로 표기해왔다.
시사저널은 두 사람의 이혼 기사는 2006년 3월 10일쯤 처음 나왔다고 지적했다. 당시 M일보와 D일보가 ‘윤씨는 유죄가 확정된 뒤 남편 류 회장과 이혼했다’는 내용을 보도했고, 이후 모든 언론이 이를 따라썼다. 영남제분에서도 언론사에 정정 요청을 하지 않아 이혼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껏 이혼한 적이 없다. 서류상으로도 여전히 부부였다. 그렇다면 류 회장은 왜 이혼한 것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시사저널은 그 단서가 지난 7월 1일 영남제분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호소문’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영남제분은 “윤모씨는 영남제분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으며, 영남제분과 11년 전 발생한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 글이 ‘윤길자 청부 살해’와 영남제분을 연결 짓지 말라는 선긋기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은 윤길자씨와 이혼한 것처럼 행세하면서도 실제로는 부당한 형집행정지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윤씨가 세브란스병원 특실에 있는 동안 하루 수백만 원대에 달하는 병실료를 카드로 결제하는 한편, 윤씨의 사면을 위해서도 계속 노력했다.
고 하지혜양의 아버지는 시사저널에 “(류 회장이)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내게 사람을 보내 ‘용서’를 요구했다”면서 “방송사 임원, 금융 계통 종사자 등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은근히 금전적 보상을 암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사건의 원인 제공자인 고 하지혜양의 사촌 오빠인 김모(40) 변호사(사건 당시 판사)는 현재까지 유족들에게 사과 한 마디 안했다고 한다.
김씨는 과거 류원기 회장의 딸과 결혼했지만 장모인 윤길자씨에게 사촌 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오해를 샀다. 그런데도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아, 결국 사촌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한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지난 7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내나 저나 10년을 마음 졸이면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 하지혜 양의 오빠는 이에 대해 “가증스런 거짓말’이라며 ”김씨는 물론 그의 부모도 지금까지 우리 가족에게 사과 한 마디 안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 상태인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의 메가폰을 잡았던 이정향 감독이 유족들과 영화 제작을 협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