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은 무척 영화적인 소재입니다. 죽을 위험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려는 죄수의 몸부림, 은밀하게 세운 탈주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가는 긴장된 과정을 지켜보며 관객은 자기 일처럼 빠져들기도 합니다. 갑갑한 ‘지금 이 곳’을 박차고 새로운 공간으로 가고 싶은 모든 이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되기도 합니다.

2013년 나온 또 한 편의 탈옥영화 ‘이스케이프 플랜 (Escape Plan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도 탈옥영화 팬들의 시선을 끌 만한 외관을 갖췄습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최첨단 보안 설비로 중무장한 세계 최악의 감옥에 갇힌 사내들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감옥과 한 판 대결을 벌입니다. 게다가 죄수 역의 두 주인공이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입니다. ‘터미네이터’와 ‘람보’, 두 전설적 슈퍼 히어로가 함께 나왔으니 전설적 탈옥영화가 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할리우드의 평범한 총격 액션 활극 수준에서 멈춘 느낌입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은 총성과 화염이 난무하는 할리우드 영화인데도 진한 뒷맛을 남기지 않습니다. 탈옥영화 특유의 스릴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탈옥영화만이 주는 각별한 재미는 비밀스럽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탈옥 과정의 긴장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발각되면 끝장인 일이기에, 죄수는 어느 교도관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씩 탈옥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 분야 영화의 명작이 된 1995년작 ‘쇼생크 탈출’(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에서 앤디(팀 로빈스)의 몸부림은 밥숟가락으로 매일매일 감방 바닥의 흙을 한 숟갈 한 숟갈 몰래 퍼내는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다음 장면이 기다려졌던 ‘쇼생크 탈출’은 스펙터클한 액션과는 다른 탈옥영화의 맛을 느끼게 했습니다. 온 몸에 그린 문신까지 탈옥 수단으로 사용한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마이클 스코필드의 눈부신 아이디어들은 두뇌게임의 재미까지 느끼게 했습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탈옥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CIA의 첨단 비밀감옥에 갇힌 탈옥 전문가 브레슬린(실베스터 스탤론). 사방이 유리로 된 독방에 갇혀 24시간 감시당하는 감옥이다.

그런데 ‘이스케이프 플랜’은 다릅니다.주인공이 탈옥에 도전하기는 하지만 탈옥의 긴장감은 별로 없습니다. 브레슬린(실베스터 스탤론)은 탈옥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보안 회사를 위한 일입니다. 일부러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됐다가 탈옥하여 그 감옥의 허점을 노출시킴으로써 보안 시스템을 다시 설비하도록 만드는 별난 ‘프로’입니다. 그의 탈옥이란 것도 인내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는 고전적 수법의 탈옥이 아니라 첨단 장비와 외부 세력의 조력을 받아 감옥 시스템의 허를 찔러 순간적으로 뛰쳐나오는 첨단 탈옥입니다.

브레슬린은 미국 CIA로부터 어느 비밀 사설 감옥을 테스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또 한번의 탈옥을 하려고 수감됩니다. 여기서 일이 꼬입니다. 그 동안 갇혀본 감옥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 보안 시설로 철통같이 둘러싸인 지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강화유리로 벽을 만든 독방들, 고압 전기가 흐르는 벽. 섬뜩한 검은 마스크로 표정을 가린 교도관들은 중무장한 채 24시간 감시합니다. 브레슬린은 모종의 함정에 빠져 감옥에서 죽을지 모를 위기에 빠집니다. 그는 수감자 로트마이어(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의논하며 자신을 가둔 자들에게 정면으로 맞섭니다.

'이스케이프 플랜' 에서 죄수들을 감시하는 CIA 첨단 비밀감옥의 관계자들. 책임자부터 교도관 역의 경비병들까지, 악당 패거리 같은 분위기가 넘친다.

이런 설정이다 보니 ‘이스케이프 플랜’의 탈옥이란 감시자들 몰래 하는 은밀한 탈옥이 아닙니다. 악마 우두머리 같은 감옥의 책임자는 브레슬린이 탈옥 전문가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영화는 “탈옥해 볼 테면 해 봐!”라고 하는 듯한 감시자와 탈옥 전문가의 공개 대결 같은 분위기로 갑니다. 클라이맥스엔 감옥 내에서 전형적인 총격 액션활극까지 펼쳐집니다. 탈옥이라기 보다는 죄수들의 무장 폭동입니다.

물론 ‘이스케이프 플랜’은 따분한 영화는 아닙니다. 나이가 좀 들기는 했지만 터미네이터와 람보가 함께 나오는 액션영화입니다.큰 기대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영화로 합격점이라는 반응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합니다.탈옥 같지 않은 탈옥에선 별다른 스릴이 없습니다. 억울한 수감에 대한 처절한 분노가 관객의 감정을 덩달아 고조시키는 법인데 ‘이스케이프 플랜’ 속 분노의 온도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못 나오게 하려는 음모를 알아채고 벗어나려 하는 브레슬린의 분노는,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 ‘빠삐용’의 빠삐용(스티브 매퀸)이나 ‘쇼생크 탈출’의 앤디(팀 로빈스)의 분노에 비해 한참 미지근합니다.

‘이스케이프 플랜’은 액션에 너무 치중하는 바람에 범작이 됐습니다. 어쩌면 근본적 문제는 탈옥수 역을 맡은 두 배우가 모두 팔뚝이 여자 허리만한 근육남이라는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우람하고 강해 보이는 그들의 체격이 고통받는 죄수의 느낌을 반감시킵니다. “스탤론과 아놀드 정도면 굳이 탈옥할 필요가 있나? 그냥 부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이죽거린 어느 네티즌 말이 그럴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