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사 가슴에서 기관총탄 발사…일부러 촌스럽게 빚어낸 묘사들이 낄낄 웃음짓게 만들어
스크린엔 유혈극 난무…어떤 이에겐 珍味지만 많은 이에겐 혐오스런 '삭힌 홍어'같은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마셰티 킬즈(Machete Kills)'라는 영화는 음식으로 비유하면 삭힌 홍어회 같습니다. 그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진미(珍味)이지만, 상당수 사람들에겐 악취나는 혐오 식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잔혹한 유혈 살인극이 난무하는 '마셰티 킬즈'를 본다면 한국의 관객은 대부분 혀를 찰 지 모릅니다.폭력 넘치는 쓰레기 영화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홍어회가 인체에 유해한 부패 식품이 아니듯, '마셰티 킬즈'역시 진짜 쓰레기 필름은 아니라고 봅니다.B급 영화의 스타일과 정서를 일부러 끌어다 주류 문화를 비틀어대고 풍자하며, 때론 카타르시스를 안기고 때론 씁쓸한 웃음을 웃게 만듭니다.
이 영화의 겉모습은 스케일 큰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를 닮았습니다.남아메리카의 혁명 영웅이 미국 워싱턴을 미사일로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 대통령(찰리 쉰)이 무적의 마셰티(대니 트레조)를 불러 혁명 영웅이라는 사람을 죽여 달라고 비밀스런 부탁을 합니다. 마셰티는 비밀 살인병기로 미국 대통령에게 고용되어 출동합니다. 멕시코를 휘젓던 마셰티는 문제의 혁명 영웅에게 돈을 대는 자가 미국의 거대 무기상 루더 보즈(멜 깁슨)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셰티는 루더 보즈 세력과 숙명의 한판 대결을 벌입니다.
하지만 '마셰티 킬즈'의 첫 번째 재미란 주인공과 악의 세력의 엎치락뒤치락 대결 스토리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놓고 구성이나 스토리 전개의 완성도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007' 시리즈처럼 긴장감 있는 활극을 즐기는 영화가 아니라,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빠져 웃어 보는 영화이니까요.
영화의 핵심은 '마셰티 킬즈'라는 제목 그대로입니다. 괴물 같은 천하무적 영웅 마셰티가 적들을 죽이는 것 자체가 알맹이입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입니다. 마셰티는 '강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의 영웅입니다. 트위터도 안 하고 농담도 안 하며 웃는 일도 없습니다.(단 오는 여자는 안 막는답니다.) 미남형 슈퍼 히어로들의 이미지를 비튼 것으로 보이는 괴물같은 마셰티가 잘나고 영리한 숱한 강적들을 큼지막한 칼 한자루로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깁니다.
영화 한 편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의 숫자와 죽는 방식만으로 본다면 '마셰티 킬즈'는 최상급의 잔혹 영화 같습니다. 어림잡아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한 편에서 죽습니다. 그중 20명 쯤 되는 사람은 목이 잘려 죽습니다. 그 자체로는 분명 끔찍한데, 끔찍하고 참혹해서 두 눈 뜨고 못보겠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스며든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들이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 전편에 가득한 B급 영화적 '3류 유머'감각이 주류 영화에서 찾기 힘든 이 영화의 별미가 됩니다. 진짜 3류가 아니라 일부러 유치한 척 하는 유머러스한 설정들이 낄낄 웃게 만듭니다. 마셰티의 묘사에서부터 만화적 상상력과 3류 유머 감각이 넘칩니다. 그는 로켓에 말 타듯 올라타 날아갈 수도 있는 남자입니다. 칼에 찔려도, 수만 볼트의 고압선에 감전돼도, 심지어 기관총탄을 맞아도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안 죽는', 얼토당토 않은 묘사를 이 영화는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습니다. 영화에선 미국 대통령까지도 아주 저질로 노는 남자로 묘사합니다. 이름부터 'Ratcock'입니다. '수컷 생쥐의 성기'란 뜻이죠. 대통령은 'fuck' 같은 단어도 툭하면 입에 올리며 두 여자둘과 한 침대서 자기도 합니다.
유혈 장면들의 끔찍함을 얼마간 완화시켜 주는 것도 액션 장면마다 깃든 익살기와 유머감각입니다. 로드리게즈 감독은 이번에는 여러가지 우스꽝스런 물건과 무기들을 영화에 집어넣어 '물건으로 웃기는' 경지를 보여 줍니다. 매끈하고 세련된 007의 첨단 과학무기를 패러디한 듯, 촌스럽기 짝 없는 사제 철판 장갑차의 모양도 우습고,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그대로 확대해 놓은 듯한 '검(劍) 3종 세트'같은 무기도 익살맞습니다.
'우스꽝스런 무기' 중 압권은 여성 전사들의 '중요 부위'에서 발사되는 괴상한 기관단총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어떤 여전사의 두 가슴 부분에서는 두 개의 총구가 돌출되고 사정없이 총탄이 발사되며 객석으로 폭소탄을 날립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전사는 가슴보다 더 중요한 하체 부위에 이상하게 생긴 총을 차고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며 총격을 합니다. 굵고짧은 총신 뒤쪽에 원통형 실린더 두 개가 붙어 남성 성기처럼 만들어진 이 '아랫도리총'이야말로 B급영화적 상상력의 극치라고 할 만합니다.
'마셰티 킬즈'는 표면적으로는 무척 끔찍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재미의 중심에 유머, 그것도 일부러 촌스럽게 꾸민 유머가 있는 영화입니다. 유머들은 잔혹한 묘사가 빚어내는 거부감을 일정 부분 완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재미를 느끼느냐의 여부는 독특한 유머 코드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입니다.
멕시코 출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1992년 단돈 7000달러로 데뷔작 '엘 마리아치'를 내놓을 때부터 B급영화적 폭력·유혈극의 새로운 재미를 빚어내 '천재'소리를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쉬지않고 자신만의 상상력을 밀고나가며 20여 편의 영화를 전세계 관객 앞에 내놓았습니다. "이런 영화 싫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비슷비슷한 영화들의 진부한 스타일과 오락성에 질린 사람들에게 '톡 쏘는' 색다른 맛을 안기기 때문입니다. 삭힌 홍어회의 존재 이유와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