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심사위원도, 문예지 편집위원도, 독자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뚝심으로 쓰겠습니다."

절필과 잠적 10년 만에 돌아온 작가 백민석(42·사진)의 기자간담회가 2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렸다. 9편이 실린 소설집 '혀끝의 남자'(문학과지성사) 출간과 함께다. '문지'의 소설가 기자 간담회는 이례적이고 오랜만의 일. 2007년 박완서 신간 '친절한 복희씨', 2008년 최인훈 전집 출간 등 기껏 1년에 한 번, 그리고 최근에는 2010년 이청준 전집 발간 이후 처음이다. '돌아온 탕아'에 대한 문지의 기대와 응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지 주일우 대표는 "거창한 기대가 있어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증발하지 말고 한국문학의 패기 있는 자산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1995년 '내가 사랑한 캔디'로 데뷔한 이래, 그는 90년대 신세대 문학의 아이콘으로 꼽혔다. 텔레비전 키드의 대변자였고, 파괴적 상상력을 현란한 문체에 담아 8권의 장편과 소설집을 발표한 뒤, 말 그대로 '증발'했다. 단편적으로 공개한 그의 지난 10년은 장기간의 기술직 근무, 기술 자격증 획득, 방송대 영문과 입학 및 졸업 등으로 종합된다. 완벽하게 '생활인'으로 보낸 시절이었다.

이번 단편집 '혀끝의 남자'에는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이란 단편이 있다. 작가답게 소설로 제출한 절필과 복귀의 변이다. 원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이모티콘적 반영인 〉.〈 -.,- ㅜ.ㅜ ^.^ 이상의 감정은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정서의 마비 과정을 겪으며 감정의 기본형인 ·.· 이외의 표정은 아예 짓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 (^(oo)^)이나 (∼.^) 같은 감정까지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주변 독자들을 보며 좌절을 느꼈다는 것. 유머와 위트로 넘어갔지만, 10년 전 그는 가족의 투병과 죽음, 작가로서의 좌절과 증오, 우울증의 자기 치료 등을 겪었다. 글쓰기를 그만두던 마지막 두어 해 동안에는 세상의 어떤 이모티콘으로도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비열하고 조악한 생각들을 했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 끔찍한 세계의 문이 닫혔고,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날 작가는 대부분 ·.·의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종종 ^.^의 표정을 짓는 여유를 보였다. 소년만화의 괴짜 주인공 같은 "캬캬캬캬" 웃음소리도 가끔 이어졌다. 그의 첫 장편 제목은 '헤이, 우리 소풍간다'. 헤이, 이제 탕아가 마침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