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주요 신문 힌두스탄타임스는 2007년 9월 5일자를 한 육상선수의 자살 기도로 시작했다. ‘육상선수 산티 순다라잔이 자살을 시도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산티 순다라잔 본인은 부정하지만 약물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순다라잔이 자살을 시도했는지를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순다라잔은 우리말로는 예쁜이, 일본말로는 ‘미코(美子)’에 해당하는 뜻의 인도 여자 이름이다. 순다라잔은 2005년 아시아선수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은메달을 수상한 육상선수다. 힌두스탄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자살 동기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지시에 따라 성별 검사를 받았고 생물학적으로 남성임을 판정받아 메달을 박탈당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순다라잔은 ‘AIS(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안드로겐 불감증후군)’ 환자로 염색체 배열은 XY로 남성이지만 남성 성기가 없었다. 또 체내 세포들이 남성호르몬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성별 종목을 구분하는 스포츠 세계에서 성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달리기 부문에서 우승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카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 월등한 신체조건과 기량 탓에 성별 논란에 시달리다가 생물학적 성감별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비공개 처리됐지만, 호주의 한 언론이 “성별 검사에서 양성자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보도하며 파문을 키웠다. 세메냐는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10개월 넘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2010년 7월 IAAF가 “의료 전문 조사단의 결과를 수용해 세메냐의 육상대회 여성 종목 출전을 허용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복귀할 수 있었다. 세메냐는 같은 달 열렸던 2개의 국제대회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땄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별 논란이 일었다. 여자 프로축구 선수 박은선(27·서울시청) 건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11월 5일 여자 프로축구 6개 구단의 감독들이 한국여자프로축구연맹에 박은선 선수의 성별 진단을 요구하며 “성별 판정을 하지 않으면 내년 시즌을 보이콧하겠다”고 나선 것에서 비롯됐다.

국가 대표선수로 뛰며 국제대회까지 출전한 선수에게 ‘여자냐, 남자냐’를 물었다는 것을 두고 박은선 선수의 소속팀인 서울시청은 물론 축구 팬들과 관계자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소속팀 서울시청은 지난 11월 7일 서울 도봉구 서울시체육회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성별 논란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 "웃으며 잘해주던 지도자분들이 나를 죽이려고 드는 게 마음이 아프다"

2005년부터 여자 실업축구 WK리그에서 뛴 박은선 선수는 올 시즌에만 22경기에 출장해 19골을 넣으며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키 180㎝에 몸무게 76㎏으로 다른 선수를 압도하는 신체조건에다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박은선 선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남자 선수 아니냐”는 오해를 자주 샀다. 단순히 오해에 그친 것만 아니라 2004년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성별 판정 검사를 받기도 했다. 서울시청 측은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며 “여자 축구선수가 맞다”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

여론은 6개 구단의 감독들에게 비판적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죽이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부터 소속팀인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이 없는 자리에서 나온 얘기로 연맹에 건의했다는 부분도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성별을 문제 삼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주간조선이 서울시청과 선수 본인의 의견을 물으려 했지만 서울시청 측에서 최종적으로 돌아온 답변은 “일일이 언론에 응대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것이었다. “일련의 사태로 본인의 마음고생이 매우 심하다”며 “선수 보호 차원에서 가급적이면 언론도 취재를 자제해 달라”는 것이 소속팀 관계자의 당부였다.

실제로 박은선 선수의 소속팀 동료는 지난 11월 8일 기자와 만나 “(박은선 선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팀 분위기도 어수선하지만, 다른 팀 감독에 대해 분노하는 선수도 많다. 단지 외모가 남자 같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런 거라면 (이번 사태를 만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선수도 있다. 같은 팀 선수로서도 수치심을 느꼈다”는 얘기다. 게다가 6개 구단 감독 중에는 박은선 선수의 학창시절 ‘은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선 선수가 SNS에 직접 “웃으며 잘해주던 지도자분들이 나를 죽이려고 드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한 이유다.

논란은 이제 인권 침해의 문제로 번지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도 한목소리로 성별 문제를 제기한 감독들을 비판했는데, 정의당 여성위원회와 성소수자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이번 논란이 “‘여성다움’ ‘남성다움’이란 허상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도취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번 논란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파문이 일자 WK리그 감독 모임의 회장을 맡았던 이성균 수원시설관리공단 감독이 지난 11월 7일 사임했고, 11일에는 유동관 고양대교 감독도 사의를 표했다. 6개 구단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감독들이 안팎으로 비난을 많이 받았다”며 “박은선 선수가 받았을 수치심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성별 논란이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스포츠 세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스포츠 세계에 여성 선수가 공식적으로 진입한 지는 100년 안팎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여성 선수가 겪었던 인권 문제와 관련해 이번 성별 논란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이번 논란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전제 조건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 팀만 생각한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할 당시에는, 만약 박은선 선수가 보통 여자 선수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과연 공정한 경쟁이 되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는 관계자도 있다. 실제로 박은선 선수는 몇 번의 성별 검증 검사에서 안드로겐 수치가 다른 여성 선수들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드로겐 과다증’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 전문가들 “안드로겐 과다증이 외향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부분 있지만 외부인이 성별을 정할 수는 없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카스터 세메냐와 인도의 육상선수 산티 순다라잔의 사례는 모두 ‘안드로겐 과다증(Female Hyperandrogenism)’, 즉 남성호르몬 과다증에 관한 판단의 문제였다. 남성호르몬을 통칭하는 말로 잘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은 안드로겐의 일종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수염, 후두 확대, 근육, 공격성향 등 남성성을 유지하는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몇십 년간 운동선수 사이에서는 근력 강화를 목적으로 남성호르몬제를 복용하다 적발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 선수가 1988년 서울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가 박탈당한 벤 존슨이다.

일반 여성은 안드로겐을 생산해 낼 능력이 없지만 대개 선천적 질환에 의해서 안드로겐 수치가 높을 수가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안드로겐 과다증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다시피하다. 몇 년간 이에 대해 연구해 온 김진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산부인과)는 주간조선에 “안드로겐 과다증 증상은 털이 많이 나는 다모증, 남성형 탈모 등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남성적 골격이 자라고 기관이 퇴화하는 정도의 안드로겐 과다증은 매우 드물다. “단순히 털이 많이 나고 탈모가 진행된다고 해서 무조건 여성호르몬을 처방하는 치료는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안드로겐 과다증으로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는 환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말이다. 특히 동양인의 경우는 안드로겐 수치가 높아도 다른 인종에 비해 남성적 성향이 덜 드러날 가능성이 커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렇다면 안드로겐 과다증을 앓는 사람은 여성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김진주 교수는 성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향적인 것으로만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염색체다. 외향적으로 남성 같고 기관의 변형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 염색체 XX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여성이다.

김진주 교수는 “만약 이번 성별 논란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외모만으로 성별을 논했다는 점에 있다”며 “안드로겐 과다증이 외향을 남과 다르게 보이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인이 성별을 정할 수는 없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래서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는 국제 스포츠계는 ‘성별 확인 규정’을 만들 때에도 ‘개인의 존엄과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아놓았다. FIFA가 2011년, IOC가 2012년 정한 이 규정은 안드로겐 수치가 높은 여성 선수가 운동 경기에 출전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성별을 누군가가 마음대로 정해줄 수 있느냐”는 비판에 정확한 수치는 정해두지 않았다. 때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염색체 검사에서 남성으로 드러난 산티 순다라잔과 카스터 세메냐에 대한 판단이 엇갈린 이유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익명을 요구하고 개인적 의견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우샤인 볼트의 신체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칙’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안드로겐 과다증 역시 선수의 한 특성으로 봐야 한다”면서도 “국제적으로는 성별 검증을 실시하는 것이 추세인 만큼, 박은선 선수뿐 아니라 다른 선수도 만약 논란이 일 것 같으면 FIFA 등에 성별 검증을 의뢰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 역시 “어떤 경우에도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며 “이번 논란이 타 구단의 이기적 발상을 비판하는 데만 천착되지 않고 앞으로 종종 벌어질 성별 논란의 기준을 마련하는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11월 18일 발매된 주간조선 2282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