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 기자]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잉투기'가 올해의 독립 영화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주연 배우 엄태구, 류혜영, 권율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발견 혹은 재발견의 재미를 주고 있다. 단언컨대 영화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들로 주목할 만 하다.
엄태구는 엄태화 감독의 친 동생이자 주연 배우. 영화 속에서 울림 깊은 중저음 목소리가 선굵은 이목구비와 조화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극 중 보는 이에 따라 한심하기 그지없을 수 있는 '찌질한' 잉여 태식 역을 맡아 자연스럽고 안정된 연기를 펼쳐냈다. 실제 엄태구는 태식처럼 남자다운 기운이 강하고, 말수가 없고 과묵했다. 그렇기에 가끔 웃는 미소가 반전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는 인터넷이 없으면 1초도 못 살 것 같은 키보드 워리어 '잉여'이지만 실상은 반대라는 것.
"영화 속에 나오는 인터넷 용어나 단어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영화를 위해 모르는 용어에 대해 공부를 했죠.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보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도 안 갔어요. 인터넷과 게임과는 전혀 안 친해요."
친형이 감독으로 함께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류승완-류승범 형제와 비교되기도 한다. "형과 무슨 대화를 주로 하느냐"는 질문에 "대화를 잘 안 한다"라고 천천히 말한다. 단번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과묵한 형제.
온라인 게임 중독, 키보드 워리어에 안면 타격 공포증까지 가지고 있는 찌질 잉여 태식에 엄태구는 그야말로 100% 빙의됐다. 무기력한 잉여인간으로의 변신은 이 영화의 큰 관전 포인트다.
류혜영은 그야말로 새로운 여배우의 발견이다. 극 중 학교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소녀 영자로 분한 그는 팔딱거리는 에너지로 영화에 산소를 공급한다.
꾸준히 단편 작업을 해온 류혜영에게 '잉투기'는 첫 장편영화다. 먹방 BJ라는 독특한 캐릭터인 그는 시종일관 인터넷에서 주로 사용되는 톡톡 튀는 대사를 쓰며 남성 출연자들을 제압(?)한다.
자칫 비호감이 될 수 있었던 캐릭터를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변화시키는 것에는 류혜영이 가진 매력이 컸다. 그는 엄태화 감독의 작품에 잇따라 출연한 여배우. 2011년 단편 ‘하트바이브레이터’로 시작된 인연은 이듬해의 ‘숲’으로 이어졌다.
"(엄태화 감독님의 뮤즈인가요?) 제가요? 그렇다면 정말 좋죠. 감독님은 정말 감수성이 대단하시고 정확하세요. 항상 여유로운 모습인데 할당된 시간에 그 일을 다 해내시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어요."
극 중 영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사실 비슷한 점은 없다. 학창시절도 좀 다르다"면서 "감독님이 제가 캐스팅된 다음 영자 캐릭터를 저와 비슷하게 만들어준 부분이 컸다. 대사 같은 것들에 내가 쓰는 말투가 많이 담겨 있었다"라고 말했다.
류혜영은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격투소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격투 수련을 소화하며 영화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깊은 애정을 쏟았다. 분노의 샌드백 발차기 등 액션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해냈을 정도. 파이팅 넘치는 영자. 하지만 그런 영자의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에 그는 "세 보이지만 너무나 외로운 기운"이라고 답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답이다.
권율은 극 중 가장 정상적(?)이다. 아니, 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역시 처절한 외로움과 고민이 있다. 그래서 일면 더 슬퍼보이는 캐릭터다.
실제 권율이라는 사람은 밝은 에너지가 가득하고 놀라울 정도의 유머 감각에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그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암울했던 분위기도 단숨에 화기애애해 진다. 겉모습은 멀쩡하나 삶의 목표가 없는 부유한 잉여 희준이 극의 차가움과 따뜻함을 중화시키는 것 처럼, 권율 역시 인터뷰 내내 배우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줬다.
무엇보다도 희준은 태식, 영자라는 개성 강한 두 캐릭터 사이에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희준은 태식과 함께 격투기를 시작하면서 난생 처음 꿈을 가지게 된다. 가장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어려울 수 있는 캐릭터를 권율은 침착하게 연기 해 냈다.
"희준이 가진 무기력이나 허세가 좋았어요. 태식이나 영자와는 다르게 희준의 얘기는 많지 않죠. 밋밋하거나 단조롭게 보일 수 있었거든요. 그런 걱정이 있긴 했지만, 최대한 영화의 밸런스를 맞춰주자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실제에서처럼 윤활유가 되고 싶었어요."
희준이 맥주 가게에서 '여자 꼬시는 법'을 강의하는 장면을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는 이들도 꽤 있다. 마치 권율의 실제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해당 장면은 그 자연스러움에 히히덕 웃음을 자아낸다. 이에 권율은 웃으며 "95% 이상이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하기도.
마지막으로 그에게 '잉투기'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관객들의 입장에서 '발견했다'는 느낌이 들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보시면 적어도 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만한,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같은 거 말이죠."
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