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거사와 독도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일(韓日) 양국간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내에서 '한일 관계 포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일본이 인접한 동북아 3개국 가운데 러시와 중국과의 관계는 한층 중시(重視)하는 기조를 보이면서, 한·일 양국 관계는 반대로 홀대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신문부수를 발행하는 최대 언론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달 6일 "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일 관계를 대신해 이 시점에서 중·일 관계 개선을 선행해야 한다는 구상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아베 신조 총리 측 핵심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한국의 주장은 감정론(感情論)에 불과해 냉정한 논의는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내 대표적인 보수 매체여서 아베 신조 정권의 의중(意中)이 담긴 보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구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대일(對日) 비판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며 "아베 총리 주변에서 동아시아 외교를 재건하면서 한일관계보다는 중일관계를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이어 "일본 정부 내에서는 '한국의 주장은 감정론에 지나지 않아 당분간 냉정한 논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아베 총리 주변에서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서유럽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BBC와의 인터뷰에서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예로 들며 "일본이 '우리는 전혀 하나도 변경할 생각이 없다'는 상황에서는, (한일) 정상이 만나도 일본의 지도자들이 역사인식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그런 얘기를 해 나간다면 정상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말한 사실도 거론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5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일본의 입장과 생각을 지금까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해 왔는데 매우 유감"이라고 정면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요미우리신문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손해 배상을 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 ▶후쿠시마(福島) 오염수 문제로 인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 금지 조치 등도 대표적인 반일(反日) 사례로 지목했다.
세종연구소 홍현익 박사는 최근 일본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일축하고 있는 한국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에 공(功)을 들이는 게 낫다는 주장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러·일 관계는 최근 밀월(蜜月) 국면이다. 아베신조 총리 취임 이후 지금까지 4차례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이달 2일엔 도쿄에서 사상 첫 러·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담(2+2 회담)을 개최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6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 나와 "일본과 러시아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외교가에서는 그동안 북방영토 4개 섬의 일괄 반환을 추진해 온 일본 정부가 2개 섬을 우선 돌려받는 선에서 타협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과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관계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 외교전문가는 "실제 센카쿠 열도에 대한 현상유지 합의점만 찾는다면 중일 관계가 예상외로 급속히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한(對韓) 관계 포기론'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용(用)'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와 영토문제로 얽힌 한국보다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목적'과 '명분'이 확실한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자는 시각이 일본 사회 주류 내에서 확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입력 2013.11.06. 22:04업데이트 2013.11.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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