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이자 동시에 지우고 싶은 친일파.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춘원 이광수(1892~1950)는 어떤 거울일까. 9일 일본 도쿄에 있는 메이지가쿠인대학(明治學院大學)에서는 국제심포지엄 '이광수는 누구인가: 한반도와 일본의 10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가 열린다.
'이광수'라는 고유명사를 제목으로 한 심포지엄이 일본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 가와무라 미나토 호세이대(法政大)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서정민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이성전 혜천대 교수가 발표자로 참여한다. 이 대학은 또 학교 예산으로 내년에 이광수 기념비도 설립하기로 했다.
◇동아시아 근대의 빛과 그림자
메이지가쿠인은 이광수, 김동인, 주요한 등이 유학했던 학교. 이 행사는 대학 개교 150주년 기념행사다. 하지만 왜 굳이 '이광수'였을까. 심포지엄을 기획한 메이지가쿠인 대학 시마다 사이시 교수는, "이광수야말로 동아시아의 서양문화 수용에 의한 근대화의 성공과 그 이면의 어둠을 업고 있는 존재"라면서 "이광수를 바라보는 것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발표자들도 이 대목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기조 강연자인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는 발제문 '일그러진 거울-일본에서의 이광수'에서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 근대문학자, 인도주의자, 천황주의자, 친일 작가… 이 모든 것은 일본인이 이광수라는 다소 일그러진 거울에 투영시킨 자신들의 초상"이라고 결론짓는다. 일그러진 이광수는 곧 일그러진 일본이라는 해석이자 반성이다.
◇일본의 일그러진 거울
이를 위해 미나토 교수는 일본 텍스트를 인용한다. 춘원의 메이지가쿠인 친구였던 소설가 야마자키 도시오의 단편 '크리스마스 이브'(1914), 당시 경성부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미야자키 세타로의 자전적 소설 '두 명의 친구', 다나카 히데미쓰의 에세이 '조선의 작가' 등이다. 그가 인용한 텍스트에는 서양적 외모로 선망의 대상이 됐던 조선 유학생 이보경(춘원의 본명), 거리의 걸인에게 있는 대로 동전과 지폐를 집어주던 톨스토이류 인도주의자,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일본 천황과 나라를 찬양하는 가야마 미쓰로(창씨개명한 춘원)가 입체적으로 등장한다.
또 재일교포인 이성전 혜천여대 교수의 '근대사와 이광수'는 민족주의자 이광수가 친일 작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시간대별로 짚는다. 안창호의 제자가 되어 민족주의에 눈뜨던 소년 이광수, 1910년 한일병합 소식에 "이제 망국민이다"라며 오열하는 청년 이광수, '위장 친일'과 '친일의 시작'으로 해석이 엇갈리는 1920년대 수양동지회 활동, 내선일체와 학도 동원을 부르짖던 1940년대의 본격 친일파 이광수….
◇친일은 일본의 문제이기도
이 교수의 관심은 춘원의 '친일' 문제는 동시에 '일본의 문제'라는 대목이다. 그는 "젊은 이광수가, 제국과 식민지라는 구조적 관계성 속에서 친일로 전향해 간 사실이 제국지배의 모순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이렇게 생각하면 '친일'은 특별히 제국 일본뿐만 아니라, 현대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아베 내각 이후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에 대한 반성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그는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내셔널리즘이 교차하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열린 기억의 장으로서 (이 심포지엄의)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어로 '한글의 탄생'을 쓴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노마 히데키 교수(일 국제교양대) 역시 이 심포지엄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광수의 영광·치욕·고민 모두 과거의 표본이 아니라 그 전부가 우리들 자신에게 직접 이어지는 것"이라며 "이광수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응시하여 끝까지 배우는 것, 그렇게 배우는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