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79) 목사는 미국 유학시절 밥 존스 고교에서 부인 트루디(75) 여사를 만나 올해로 55년동안 해로했다.

김장환 목사는 트루디 여사에게 “45년 동안 한 교회(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날 싫어하는 사람은 봤어도 내 마누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봤어요”라고 말했다.

트루디 여사는 ‘김 목사의 어떤 점이 좋아 머나먼 타국까지 따라와 60년 가까이 사시느냐’ 묻자 빙그레 웃었다. “귀엽게 생겼잖아요. 호호!”

지난달 17일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에서 만난 김장환 목사 내외. 인터뷰를 위해 앞치마 대신 스카프를 맨 트루디(오른쪽) 여사를 김장환 목사가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고 손은 이웃을 향하게 하라'가 이 노(老)부부의 한결같은 소신이다. 아래 왼쪽 사진은 1973년 6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집회를 통역하고 있는 39세의 김장환 목사. 오른쪽 작은 사진은 초등학교에서 빵을 굽고 있는 트루디 여사.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아 종종 '일하는 아줌마'로 오해받는다.

두 부부에게 2013년은 뜻깊은 해다.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95) 목사가 여의도 5·16 광장에서 100만명 인파를 불러모은 집회를 한 지 꼭 40년 되는 해다. 당시 39세였던 김 목사는 통역을 맡아 일약 ‘스타 목사’ 대열에 올랐다.

또 김 목사가 일군 ‘극동방송’이 서울 사옥을 새로 건립하는 해다. 1970년대에 지어 스튜디오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인들을 업어서 이동시켜야 하는 낡은 건물이었다. 건축비는 모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주머니를 열게 하는 비결요? 자신이 낸 돈이 목적대로 쓰일 것이란 믿음을 주면 됩니다.”

김장환 목사는 미군 부대에서 잔심부름하는 소년인 이른바 하우스 보이 출신이다. 김 목사는 “하우스 보이였던 내가 올해만 해외 출장을 다섯 차례나 다녀올 정도로 성공한 트루디 여사 덕분입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루디 여사는 지금도 중앙기독초등학교 한 귀퉁이에서 ‘몸뻬’ 바지 차림으로 빵을 구워 팔아 수익금을 장애인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내놓고 있다.

김 목사의 불만은 한 가지, 그녀의 너무 ‘큰 손’이다. “죄다 바자회나 재활용품으로 내놔요. 한번은 아끼던 와이셔츠가 없어져 찾아봤더니 교회 바자회에 나와 있습디다. 내가 1만원 주고 도로 사오지 않았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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