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많은 국민이 알고 있는 가요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 일부다.
이사부는 누구였나? 1501년 전인 서기 512년(지증왕 13년), 우산국(于山國)을 복속시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독도 영유권을 확보한 인물이다. '우산국'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울릉도·독도의 두 섬'이라 기록돼 있다.
강원 삼척시와 ㈔한국이사부학회, 북악산포럼이 함께 주최하는 동아시아 국제 포럼 '이사부, 독도와 동아시아의 평화'가 4일 오후 1~6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이사부 선단의 출항지였을 가능성이 높은 삼척에 '이사부 영토 수호관'을 건립하기 위해 마련한 포럼이다.
손승철(강원대 사학과 교수) 한국이사부학회장은 발표문 '이사부, 동해의 해양 영웅과 그 후예들'을 통해 "이사부는 서기 6세기 초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 영토로 만든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사부는 내물왕의 4세손인 진골 귀족으로, 505년 실직주(삼척)의 군사령관인 군주(軍主)가 됐고, 512년 하슬라주(강릉) 군주가 돼 우산국을 정벌했다.
이것은 신라가 '망라사방(網羅四方·덕을 사방에 미치게 한다)'으로 알려진 지증왕·법흥왕·진흥왕 3대의 대규모 팽창 정책의 시작이었다고 손 교수는 지적했다. 이사부는 우산국 정벌로 동해 제해권을 확보한 뒤 정치적 실권자인 병부령이 돼 한강 유역과 대가야 정복전을 수행했다. 우산국 정벌이 20대 때 일이었다면 562년 대가야를 정복할 때는 70대였다. 실로 평생에 걸친 '신라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의 시작이 울릉도·독도 정벌이었던 것이다.
종래 이사부의 출항지는 강릉설과 삼척설로 나뉘어 있었으나, 손 교수는 "삼척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기록상 신라가 삼척을 군사 중심 도시로 유지하면서 강릉을 행정 중심 도시로 특화한 것으로 해석되고 ▲삼척 앞바다에서 먼바다로 빠지는 해류를 타면 울릉도와 독도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를 발표하는 조셉 스톨트먼 미국 웨스턴미시건대 지리학과 교수는 "해류와 고고학 증거로 볼 때 이사부 장군의 정벌 당시 울릉도 거주민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며, 지리적으로 이들은 분명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호사카 유지(역사 세션) 세종대 교수, 이상태(지리 세션) 한국고지도연구학회장, 김명기(국제법 세션) 명지대 명예교수, 황용식(해양·통일외교 세션) 전 대만 대사 등이 발표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