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와 '감독 하정우'에 대한 대중들 반응은 역시 다르군요. 하정우가 여러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에 대해서는 많은 팬들이 거의 만장일치의 갈채를 보냈지만,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 '롤러코스터'에 대한 관객평은 엇갈립니다. '꽤 웃긴다.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호평도 있지만, '이것도 영화냐'는 악평도 눈에 띕니다. 영화와 하정우를 싸잡아 비난하는 최상급의 욕설도 들립니다.
물론 초보 감독의 첫 영화답게 미숙한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짜증만 유발하는 최악의 영화'인 것처럼 비난을 퍼부은 일부 네티즌의 악평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내게 이 코미디 영화를 보는 시간은 그리 따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꽤 여러 대목에서 낄낄 대며 웃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롤러코스터'의 미덕이라고 봅니다. 설정이 독특합니다. 영화 한 편으로 뜬 한류스타 마준규(정경호)가 일본 활동 중 터진 스캔들 때문에 급하게 귀국길에 오릅니다. 그가 타고 오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영화의 거의 전부입니다. 비행기라는 닫힌 공간이 배경이고, 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단조롭지는 않습니다. 도중에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승객들이 공포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내에서 테이저 건이 발사되는가 하면 사람이 죽는 등 몇 가지 사건들이 양념 구실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하품나지 않게 끌고가는 동력은 이런 스릴이나 사건들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계속 낄낄거리게 만드는 웃음의 맛에 있다고 봅니다.
'롤러코스터'는 현실을 리얼하게 그리는 대신 비틀고 과장하고 만화처럼 황당하게 그려냅니다. 인물들 중 평범한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한결같이 괴짜이고 편집증적이거나 찌질합니다. 주인공인 마준규부터가 대중들 환호를 받는 스타지만 시쳇말로 무척 '까칠한'인간입니다. 때묻은 듯한 물건들은 일일이 티슈로 닦는 결벽증 성향을 갖고 있으며 편집증, 비행공포증까지 있습니다.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류스타 마준규가 같은 비행기에 탄 것을 알고는 앞다퉈 다가와 '사인해 달라' '사진 찍자'며 귀찮게 합니다. 신혼의 여성이 마준규에게 너무 치근대자 함께 있던 남편이 분노해 스타 앞에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황당한 소동까지 벌어집니다. 팬이 아니라 3류 파파라치 같습니다. 가장 튀는 인물들은 비행기의 승무원들일 것입니다.팔뚝에 문신을 한 기장이 조종실에서 맥주를 들이키며 담배를 피워대고 스튜어디스들은 자기들끼리 있는 공간에서 온갖 쌍욕을 섞어가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이 각양각색 인물들이 좌충우돌 부딪치며 빚어내는 코미디 속에는 온갖 형태의 유머와 풍자가 스며 있습니다. 특히 언어유희들이 무척 많습니다."조종사가 왜 술 마셔?" "대리가 없잖아"라는 문답이 오가고 "사무장님 장(腸)이 불편하시대요"하니까 "사무 '장'이니까 장이 안좋지"라고 받는 황당 개그까지 나옵니다. 굴지의 중국계 그룹 이름이 중국 밑반찬을 연상시키는 '짜사이 그룹'입니다.
욕설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극증 마준규라는 한류스타를 띄운 영화의 제목이 바로 '육두문자맨'입니다. 마준규 입에선 급하면 'X할'등 욕설이 자동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러면서 "죄송해요 캐릭터 때문이예요"라고 변명을 합니다. '19금 욕설'들은 종종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위해 영화에서 교묘하게 이용됩니다. 가령 팬이라는 소년이 마준구에게 "욕 잘 한다면서요. 욕 좀 해봐요"라고 당돌하게 요구하자, 마준규가 낮은 소리로 "이 XXXX가 어디서 어른에게 욕을 해 보라고 말하고 지랄이야 X새끼야"라고 일갈하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조종사들 잡담에선 흔히 쓰는 "싫으면 시집 가"라는 표현에 좀더 살을 붙여 "싫으면 시집가서 시아버지 똥 닦아라"는 말이 등장합니다.'롤러코스터'는 캐릭터와 캐릭터, 대사와 대사가 충돌하며 웃음이 배어나오게 합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기대가 조금씩 늘어 가면서 어느틈에 영화 속으로 빨려들게 만듭니다.
어느 네티즌은 '롤러코스터'가 '유쾌한 영화'라고 표현했는데,맞지 않는 말입니다.이 영화가 유발하는 웃음은 '깔깔깔''하하'하며 '빵 터뜨리는' 그런 웃음은 아닙니다. 즐겁고 상쾌한 웃음과는 정반대 분위기의 웃음을 짓게 합니다. 그건 씁쓸한 웃음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풍경의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런 꼬락서니들을 새삼 확인하며 짓는 웃음입니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망가지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많은 이들에게 친절하고 단정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직업인들입니다.그런 인식을 깨고 이 영화는 승무원들 이미지를 확 뒤집어 놓습니다. 단정한 제복을 입은 스튜어디스들이 '마준규 할 놈''싸가지 없는 놈' '또라이 새끼'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웃기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영화는 반듯한 이미지의 승무원들을 현실과 동떨어지게 비틀어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완전히 비현실적인 황당한 묘사일까요..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예쁘장한 메이크업과 판에 박힌 승객 접대 멘트 속에 감춰진 인간의 은밀한 속마음을 거침없이 표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허울 속에 가려진 세상의 우스꽝스런 측면이 우리를 웃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롤러코스터’는 세상의 요지경 같은 단면을 까발리며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적 맛을 느끼게 합니다. 위험 부담을 피해 안전한 길로 가는 대신 새로운 길을 택해 자기 색깔을 드러내 보이려 한 감독 하정우의 태도에서는 발전 가능성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