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a href=http://www.yes24.com/24/goods/11185482?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span><a href=http://www.yes24.com/home/openinside/viewer0.asp?code=1118548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pre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

인간이 만든 빛의 세계사|제인 브록스 지음|박지훈 옮김|을유문화사|380쪽|1만5000원

'밤'이라고 발음할 때 두려움과 불안이 담기던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도 아니다. 500년 전 밤은 난공불락, 공허한 시간이었다. 도시도 참나무숲처럼 캄캄했고 사람들은 램프나 양초로 밥그릇과 책장을 비췄다. 한숨을 내쉬면 불꽃과 더불어 그림자도 떨리다가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약한 불빛이라도 아껴 써야 했고 어스름에 저녁을 먹으면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밤하늘은 별이 뒤덮었다.

빛의 발달로 밤은 외연을 넓혀 갔다. 19세기 중반 마침내 유럽에서 '나이트 라이프(nightlif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1871년 가스 폭발로 뉴욕 일부가 암흑천지로 변한 사건 기사를 실으면서 이런 제목을 뽑았다. '빛을 도난당하다.' 이 책은 해와 달의 리듬 밖으로 삶을 이동시켜준 빛의 형태들을 그러모았다. 동물 지방(脂肪)부터 LED 조명까지 '빛에 얽힌 모든 것의 역사'다.

◇고래에게 감사할 일

석등(石燈)의 역사는 4만년이 안 된다. 석등에 넣을 기름은 동물에게서 구했다. 로마인들이 처음 밀랍 양초를 만들었는데 불꽃이 선명하고 기복 없이 고르게 타올라 시간을 재는 용도로도 쓰였다. 영국에서는 가축에서 나오는 수지(獸脂) 양초가 빛의 원천이었다. 질 좋은 양초는 양지(羊脂), 평민들이 쓰는 양초는 우지(牛脂)로 만들었다.

18세기 전까지는 세상에 가로등이 없었다. 중세에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불을 꺼야 했다. '통행금지령(curfew)'은 불을 덮어 끈다는 뜻의 프랑스어 'couvre-feu'에서 비롯됐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부싯돌을 담는 통이 거의 모든 부엌에서 발견된다. 우리 조상이 화로에 숯불을 담아 난방을 하면서 불씨를 보존했듯이 일단 불을 지피면 지키는 것도 일이었다. 주변 환경을 이용해 빛을 구하기도 했는데 서인도제도나 카리브해에서는 반딧불이를 모아 조명으로 썼고, 밴쿠버섬에서는 말린 연어, 스코틀랜드에서는 슴새 사체를 태워 횃불처럼 썼다.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 많은 빛을 원했다. 도시는 런던·파리·뉴욕·암스테르담 등에 가로등이 등장한 18세기부터 암흑에서 점차 벗어났다. 가로등 불빛의 원천은 고래 기름이었다. 긴수염고래 한 마리에게서 기름 6800L(리터)가 나왔다. "값싼 고래 기름이 대량 공급되면서 사람들은 저녁에 램프를 더 많이, 더 오래 켤 수 있게 됐다."

◇광물 연료, 밤을 무너뜨리다

19세에는 더 밝고 깨끗한 광물 연료가 수지와 고래 기름을 대체해 나갔다. 빛의 역사도 양초와 램프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가스불, 성냥불, 등유 램프…. 특히 가스불은 불꽃의 성질 말고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가스관을 통해 이웃과 연결되면서 사람들의 삶도 복잡하게 얽히고 서로 의지하게 됐다.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저녁 시간을 여가에 할애했다. 윈도쇼핑이 취미로 자리 잡으면서 저녁은 소비자의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낮 시간은 바라는 만큼 연장될 수 있다. 시민이 '자신만의 별'을 갖게 됐다"고 썼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는 1888년 겨울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아를의 밤은 훨씬 캄캄해. 파리에 가면 가로등의 효과를 화폭에 옮길 생각이야’라고 썼다.

가로등이 환해지면서 밤거리는 더 소란해졌다. 술꾼들이 2차, 3차를 갔고 창녀들은 문밖으로 나왔다. 빛 때문에 하인들의 노동 시간은 더 길어졌다. 밤새 불을 켤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 늦잠이 권력과 부의 징표가 됐다. 반면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하는 가스 노동자들은 도시 변두리로 밀려났다. 환경적 불평등이 새로운 형태로 탄생한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격차는 점점 커졌다.

현대인은 전기 스위치에 익숙하다. 1879년 미국 사람들은 에디슨 덕에 '빛의 미래'를 만났다. '딸각' 소리와 함께 진공 유리구 속에서 나타난 빛은 불꽃도 나지 않고 달래거나 어를 필요도 없었다. 더 이상 떨리지도 기울지도 않았고, 냄새가 나거나 촛농을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불이 붙을 염려도 없었다. 백열등의 탄생이다.

◇빛의 역사, 정신의 역사

램프나 양초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손으로 켜고 숨을 내뱉어 끌 수 있는 이 불꽃은 우리 시야를 사로잡고 생각을 비워주는 힘이 있다. '불은 인간 정신을 반영하는 최초의 실체이자 최초의 현상'(가스통 바슐라르)이었다. 등잔이나 초에 불을 붙이기 위해 꼬아서 꽂은 '심지'에도 마음 심(心) 자를 쓴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횃불을 들고 있다. 올림픽 성화(聖火) 봉송도 떠오른다. 사람들은 불꽃에 정신을 담는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극작가 아서 밀러는 "드라마에는 희망의 불꽃이 있어야 하고 등장인물 중에는 사회의 진보를 믿는 낙관주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빛을 가장 먼저 접했고 부족함 없이 빛의 혜택을 누렸다. 빛의 역사에는 그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릴 때 양초(동물 지방)를 태워야 할지 먹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은 빛 때문에 잃어버린 별, 전쟁으로 인한 소등(消燈), 조명 과잉이 부른 생태계 파괴도 진지하게 다룬다. 역사 저술가인 제인 브록스는 '빛의 역사는 기술, 권력, 정치, 고난, 계급이 만든 이야기'라고 썼다. 흥미롭게 읽히지만 이해를 도울 그림은 박하고 인용은 과다해 이따금 산만해진다. 원제 'Brilliant: The Evolution of Artificial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