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등산 동호회 회원 정모(49)씨 일행은 등산하러 가는 길에 탄 마을버스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다. 차량 손상도 거의 없었고, 충격이라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의 출렁임 정도일 뿐이었다. 정씨 등은 남한산성 산행도 계획대로 마쳤다. 그러나 이들은 이튿날 목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이 중 김모(여·64)씨는 실제 18일 동안 입원해 보험금 110만원을 챙겼다. 이들의 '무기'는 '2주짜리 진단서'였다. 그러나 이 진단서는 사실상 허위임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조사 등을 통해 일당에게 사고 당시 거의 충격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 8월 초 보험 사기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고교생이 낀 일당 6명도 역시 2주짜리 진단서를 무기로 삼았다. 이들은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오토바이를 추돌한 후 가해자임에도 무조건 병원에 드러누웠다. 이들이 이렇게 2008년 4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타낸 보험금은 2120만원.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동경찰서 정병천 교통조사계장은 "일당이 '진단서를 가져왔고 입원도 했으니 보험금을 달라'고 떼를 써 보험사 측은 어쩔 수 없이 보험금을 지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1일 본지 기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가장해 입원한 뒤 받은 2주짜리 진단서(왼쪽). 병원 측에“증상을 더 심각하게 적어달라”고 요청하자 상해등급 12등급인‘요추 및 대퇴부 좌상(허리·엉덩이 삠)’에서 8급에 해당하는‘요추 및 대퇴부 염좌’로 수정된 진단서(오른쪽)를 발급해줬다.

교통사고 처리 현장에서 2주짜리 진단서가 마법을 부리고 있다. 명확한 발급 기준도 없어 대형 병원에선 거의 끊어주지 않는 2주짜리 진단서를 '교통사고 전문'으로 알려진 소형 병원에선 마구잡이로 끊어준다.

2주짜리 진단서가 남발되는 것은 이른바 '나이롱환자'들과 중·소형 병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의료보험 수가가 낮다 보니 사무장 등 직원들이 '무조건 진단서를 끊어주겠다'고 하고 이왕이면 환자를 입원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병원들은 악성 피해자들 사이에서 '찾아가면 무조건 진단서를 발급해주는 곳' '아프다고 하면 일단 병실부터 배정해주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일부 양심적인 의사들은 차량 수리비가 10만~20만원에 불과한 경우 환자가 아프다고 주장해도 진단서 발급 및 입원 요청을 거부하고 있지만 소수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소위 '나이롱환자'들을 부추기는 의사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악의적 입원이 들통 나 환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의사가 함께 책임을 진 경우는 거의 없다. 벌금을 내거나 허위로 청구한 식대·주사비 등을 반환하는 정도의 책임을 지는 게 보통이다. 한 보험사 직원은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데다가 배상 액수도 10만~20만원에 불과해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당국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수사기관에서 기소를 하지 않는 이상 정부가 임의로 의사 면허를 정지·취소할 수는 없다"고 했고, 경찰은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복지부나 기타 기관에서 허위 진단 여부를 판단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니 의사의 불법적 행위를 밝혀낼 정부기관은 사실상 없다.

허위 진단서를 밝혀낼 수 있도록 피해자의 건강 상태를 가늠할 만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독일 알리안츠보험사는 사고시 피해 차량의 속도가 시속 20㎞ 이하이거나 수리비가 500유로(약 72만원) 이하인 사고에 대해서는 목 상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필연 대한정형외과협회장은 "아주 경미한 질병을 진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는 환자의 표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보험사의 자체 조사 기능을 강화해서 허위 입원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기용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2주짜리 진단서는 사실상 환자 의견에 따라 작성되는 것인데, 현행 제도는 이 진단서의 신뢰도를 너무 고평가하고 있다"며 "진단서와 별개로 입원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보= fak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