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의 학점 인플레 현상을 부추기는 데 앞장선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서울대의 학점 인플레 주범이 법대·경영대·사회대 등 문과 계열 주요 선호 학과군인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대 학점 인플레이션은 대학 공시 사이트 분석을 통해 공공연히 거론됐지만 서울대 자체 자료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4일 서울대가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현재 A학점(평균 평점 3.7 이상)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단과대학은 법과대학으로 전체 재적 학생의 61.1%나 됐다. 문과의 대표 인기 학과인 경영대 역시 A학점 학생 비율(58.9%)이 높았고, 사범대(58.0%)와 사회대(56.0%)가 그 뒤를 이었다.

법대의 A학점 비율은 5년 전인 2009년보다 14%포인트가량 높아졌다. 당시 법대는 17개 단과대학 중 A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이 10번째(47.3%)였다. 법대 관계자는 "로스쿨이 생기고 난 뒤 학생들이 점수 관리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며 "예전에는 고시 볼 거라며 학점을 대충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학점을 잘 받고 졸업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는 "2009년 이후 법과대학 학부가 없어지면서 남은 학생들이 측은해 점수를 더 잘 준 것 아니겠느냐"며 "남은 학생이 대부분 고학번인데, 고학번은 학점 관리를 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A학점 비율이 5년 전보다 6%포인트 오른 경영대 관계자는 "경영대는 전공 필수 과목을 영어로 많이 가르치는데, 이 경우 절대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아 학점이 잘 나오는 것"이라며 "취업에서 점점 학점이 중요해지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서울대는 A학점 부여 비율을 수업 정원의 20~30%로 권장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교양 과목은 A와 B학점을 합해 70%가 넘으면 전산 입력이 되지 않지만, 전공과목은 제어 수단이 없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수들의 학자적 양심에 맡겨 학점을 부여하는 상황"이라며 "권장은 하지만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에 따르면 올해 전체 학생 중 A학점을 받은 학생은 절반인 49.5%다.

A학점이 적은 단과대학은 치과대(11.8%), 약학대(34.0%), 의과대(37.5%)로 의·약계열이었다. 치과대학 관계자는 "취업 압박도 없고, 학문 특성상 이전 과목을 제대로 이수 못하면 후행 과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점을 엄격하게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대(42.6%)와 자연대(44.4%)도 상대적으로 A학점 비율이 하위권이었다.

실제로 여러 대학은 학생들의 학점을 부풀리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한다. 4.3점 만점 학사과정을 채택하는 이화여대는 지난 9월부터 4.5점 만점으로 학점을 환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지난 8월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모(25)씨는 "졸업 때만 해도 4.5점 만점 환산 학점이 3.68이었는데, 최근 다시 성적증명서를 뽑아봤더니 3.82점이었다"며 "4.3 만점 방식으로 돼 있는 기존 학점에 무조건 0.3을 더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기존 비례식을 따르면 취업에서 다른 대학 출신보다 손해를 본다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연세대는 낮은 학점을 받은 학생이 4.5점 환산 학점을 받을 때 유리하도록 환산 제도를 손봤다. 서강대는 4.3점 만점 학점을 100점으로 환산한 뒤 4.5점 만점으로 다시 환산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마다 학점 환산 방식이 달라 같은 학점이라도 최대 0.3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성호 의원은 "서울대, 그중에서도 명문 학과라는 곳이 학점 인플레를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고, 대학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학점을 부풀리는 상황"이라며 "대학 학점 인플레 현상을 막기 위해 학점 전산 입력 강제 필수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