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기억하기 위해 일부 중국인들이 이 금기 사항을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에 비밀리에 숨겨둔 사실이 최근 한 홍콩 언론에 의해 조명됐다.
홍콩 아주주간(亞州周刊) 최신호(9월)는 중국에서 톈안먼 사태와 그와 연관된 어떤 것도 민감한 사안으로 금기시되고 제한받지만 '8964'를 휴대전화 끝 번호로 선택하는 것을 금지되지 않았다며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지난달 9일 캐나다의 세계적인 서커스단인 '태양의 서커스단'이 중국에서 공연 첫날인 8월9일 베이징 마스터카드센터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 ‘They don’t care about us’와 함께 스크린에 ‘탱크맨’ 사진을 비추는 충격적인 일을 벌였다. 그러나 의도적인 배치든, 무의식적인 실수였던 이후 중국 공연에서 이 사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외신에 의해 널리 전해졌지만 중국 본토 매체는 일제히 함구했다. 탱크맨은 왕웨린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톈안먼 사태 당시 톈안먼 앞을 동서로 지나가는 대로 창안제(長安街)에서 시위 진압에 나선 탱크 행렬을 맨몸으로 가로막고 나선 한 청년을 이르는 말로 톈안먼 시위자 혹은 당국에 저항한 중국 청년의 상징이 됐다.
그의 이 모습을 담긴 AP통신 사진은 전 세계 언론을 탔다. 그 뒤 이 탱크맨은 톈안먼 사태를 상징하는 의미가 됐지만 중국에선 금지돼 있다.
아주주간은 캐나다 서커스단의 이런 소동이 여전히 뉴스거리가 됐던 것은 톈안먼 사태가 여전히 민감한 정치적 금기사안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공공장소에서는 그 사건과 연결된 그 어떤 이미지도 볼 수 없고, 소셜네트워크에서 해당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바로 삭제된다.
이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휴대전화 끝번호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금기된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한 회사의 설립자이자 소유주인 리줘란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녀의 3개 휴대전화 끝번호 모두 8964이며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런 시도를 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번호를 얻기 위해 꽤 고생했고, 첫 번째 번호는 심지어 유무선 전화업무를 전담하는 톈신쥐(電信局)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리씨는 또 이 번호는 무슨 암호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가끔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남기면 어떤 직원들은 숙이고 있던 머리를 들어 자신을 한번 바라 보면서 ‘참 재미있는 번호네요’라고 말해준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박사과정 대학원생 왕젠궈(가명) 역시 지난 2002년부터 8964가 끝번호인 전화번호 번호를 사용해왔다. 왕씨는 그 이유에 대해 "톈안먼 사태를 기억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그런 고상한 의도는 없다. 단지 금기사항을 슬쩍 건들고 싶어서, 그 자체가 나한테는 자극적인 것"이라고 역설했다.
왕젠궈는 자신이 베이징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할 때 탱크그림이 그려져 있고 관련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교문 밖에서 사복경찰에 잡혔고, 그 뒤 학교 보안과에서 심문 및 사상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왕젠궈는 중국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휴대번호 끝번호가 8964인 번호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방식은 금기사항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는 것과 달리 물의를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2년부터 지금까지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면서 약 10명이 이 번호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며 이 번호를 보고 톈안먼 사태를 떠올리는 중국인은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론적으로 끝번호가 8964인 휴대전화는 1만개 가운데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는 무작위로 이 번호가 정해졌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주주간이 무작위로 선정한 8964가 끝번호인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무작위로 이 번호가 정해졌다고 주장하며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당 기관지의 기자로 밝혀졌다. 익명을 요구한 이 사용자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이 번호를 선택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는 이를 통해 조용히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 것 뿐이며, 그 외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가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유혈사태를 일으켜 중국 현대사에 최악의 정치적 참극 중 하나로, 최근 중국 당국은 이 사건을 ‘반혁명폭란’에서 ‘정치 풍파’로 표현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