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강필주 기자]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볼링편 미모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으로 유명해진 김슬기 프로볼러(24, 사가미하라 파크레인). 김슬기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최초로 일본 진출에 성공한 한국 여성 프로볼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지난 9월 1일 사가미하라 파크레인이라는 일본 후원사까지 생겼다. 이는 한창 멋을 부리고 즐길 나이지만 오직 '볼링'으로만 인정받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더욱 새롭게 다지게 만들고 있다.
▲ 쉽지 않았던 일본 진출
김슬기는 일본의 볼링 이벤트 TV 정규프로그램 P-리그를 통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혁명'이라 불리는 P-리그는 5개의 'P(Pretty, Performace, Passion, Power, Perfect)'를 어필할 수 있는 24명의 여자볼러들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 김슬기는 이렇게 치열한 지난 1월 열린 42번째 P-리그에서 우승을 거뒀다.
실력과 끼를 겸해야 설 수 있는 무대 P-리그 정상에 오르기까지 김슬기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우선 남들보다 볼링 입문이 늦었다. 아버지 김경태(53) 씨가 볼링 지공사였지만 중학교(신창중) 2학년 겨울 방학이 돼서야 볼링공을 잡았다. 지공사는 볼링공을 손에 맞게 뚫어주는 직업인 만큼 김슬기는 아버지 때문에 자주 볼링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볼링은 단순히 눈으로 즐기는 운동이었다. 김슬기는 "볼링하는 것을 자주 봤지만 취미로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2학년 성적표를 보시더니 '운동하자'고 하셨다"고 솔직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슬기는 당시 고교팀 남학생들 틈에서 기본이 되는 스텝을 배웠다. 이 때문인지 남자처럼 백스윙이 높고 파워풀한 지금의 투구폼을 갖게 됐다고. 김슬기는 그 때 배운 남성미 넘치는(?) 투구폼 때문에 일본 여자선수들과 뚜렷하게 구분이 되고 있다. "일본 선수들이 이쁘게 투구한다면 내 투구폼은 남성적"이라는 김슬기는 "백스윙이 상당히 높고 스피드도 월등해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그 때보다 파워가 줄었지만 대신 정확한 볼링으로 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고교(압구정고)를 졸업하고 경북외대 볼링팀에 입단했다. 처음 집을 떠나 합숙에 나섰던 때였다. 그런데 김슬기는 적응하지 못했다. 김슬기는 "한달만에 학교 생활을 포기했다. 혼자 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단체생활이 쉽지 않았다. 이후 1년을 놀다가 21살 때 프로 테스트를 봤다"면서 "1차 테스트에서 32명 중 31등으로 겨우 통과했다. 이후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다. 그래도 프로가 되길 잘했다 생각한다. 혼자 해결해야 하고 활동적인 내 성격과 맞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 진출은 우연한 기회였다. 2010년 이환모 월간잡지 볼링코리아 대표와 유청희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이사의 권유로 참가한 히로시마 오픈대회를 통해 P-리그를 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한 번 갈 때마다 비자비용으로만 100만 원이 들었다"는 김슬기는 "하지만 이 대표님과 유 이사님이 도와주셨다. 또 일본으로 가고자 하는 내 열정은 아버지의 반대도 무릅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 최초 일본 여자프로리그 발판
P-리그는 일본 최고 인기 볼링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일본프로볼링리그(JPBA)는 따로 있다. 김슬기의 목표도 JPBA 우승. 하지만 개방적인 남자 JPBA에 비해 여자 JPBA는 단단히 걸어잠구고 있다. 아직 일본 국적 외 여자볼러에게 JPBA 레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김슬기가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JPBA를 노크할 작정이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그 발판이 되겠다는 각오다.
P-리그에서 인지도를 높인 덕에 김슬기에게는 든든한 뒷배경이 생겼다. 지난 9월 1일 사가미하라 파크레인과 후원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일본 소속사가 한국선수와 계약을 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일본 볼링계에서도 사건인 셈이다. 사가미하라 파크레인 볼링장 대표는 일본볼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경영자협회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월부터 사가미하라 파크레인 로고를 달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김슬기인 만큼 JPBA 참가도 곧 가능하지 않을까 낙관하고 있다. 또 민단에서도 도움을 주고 있다. 민단은 재일한국인을 위한 조직으로 전국체전에도 매년 볼링팀을 파견하고 있다.
김슬기는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 일본에서 볼링을 하고 있다. 사가미하라 파크레인은 작년 겨울부터 인연이 돼 계약까지 이어졌다. 소속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또 민단분들 때문에 비자 문제가 훨씬 수월해졌다. 금전, 숙박 문제 등 일본의 모든 스케줄 관리도 민단분들이 도와주신다. 이제 오직 볼링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 '최초'에 대한 즐거운 부담
힘들었던 시절을 넘긴 김슬기는 요즘 수입이 짭짤하다. P-리그를 제외하고 '챌린지'라 불리는 각종 이벤트 대회에 꾸준하게 초청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들과 경기도 하고 원포인트 레슨도 하고 있다. 처음 하루 10만 원 정도던 개런티가 P-리그 우승으로 하루 50만 원까지 뛰었다. 팬들도 생겼다. 김슬기는 "여기는 한국과 달리 볼링대회가 유료입장이다. 관객들이 돈을 내고 입장한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부분이었다. 또 볼링인기가 여전하고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이곳저곳에서 챌린지 초청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기가 쉽진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기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연소 한국여자프로볼러 김슬기는 일본 진출을 통해 수많은 '최초' 수식어를 가졌다. 최초 해외진출, 최초 P-리그 우승, 최초 일본 후원사 계약 등.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김슬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부담이다. 일본 진출을 두고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왜 한국에서 활동할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일본 볼링을 접하면서 더 열정이 생겼다. 볼링 문화를 실증내지 않고 유지해온 것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부담이라는 생각보다 즐기려 한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또 김슬기는 "이제 소속사도 생긴 만큼 바빠지고 집중할 시기다"면서 "나중에 연애는 하겠지만 많은 선물을 받은 만큼 볼링에 더 매진하고 싶다"면서 "한 번 일본에 갔다오면 몇 kg씩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가진 '볼 스피드, 퍼포먼스' 등을 이용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일본리그 투어에 나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박준형 기자 /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