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25m. 정점을 지난 회전열차가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가속도를 붙이더니 순식간에 360도 회전을 한다. ‘악~ 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사람을 매달고 미친 듯이 내달리는 회전열차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88열차’로 불린 360도 회전열차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84년 3월 15일이었다. 열차에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레일 길이 597m, 최고속도 시속 80㎞.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내 놀이동산에 ‘88열차’가 등장한 이후 3분의 짜릿한 공포를 즐기기 위해 1~2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보통이고 곡예하듯 돌아가는 88열차를 보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줄을 이었다.

지난 3월 27일 어린이대공원의 ‘88열차’는 포스코의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졌다. 한 번에 24명씩 태우고 내달린 지 29년 만이었다. 서울시가 안전을 이유로 노후시설을 폐기했다. 88열차와 함께 바이킹, 대관람차(작은 관람차를 매달아 바퀴처럼 도는 기구)도 조각조각 해체돼 트럭에 실려 나갔다. 일명 ‘허니문카’라고 불릴 만큼 공공연한 키스 장소였던 대관람차나 88열차의 추억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고철 덩어리로 변한 놀이시설을 보면서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훔친 사람이 있었다. ‘88열차’를 국내에 들여온 이석명(82) 동마㈜ 회장이었다.

그의 아쉬움을 알았는지 정부는 놀이시설산업을 30년간 이끌어온 이석명 회장의 공을 인정해 9월 27일 관광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수여한다. 이 회장이 정부로부터 훈장 소식을 전해 들은 다음 날인 23일, 동마가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 임진각 광장의 평화랜드를 찾았다. 임진각 전망대 옆에 있는 평화랜드에는 평화열차·회전목마·파도그네 등 17개의 놀이시설이 있다. 길이 800m의 평화열차는 도라산역까지 운행되는 경의선을 옆에 두고 버마 아웅산테러 기념탑 주위를 돌며 추억의 기적 소리를 울려대고 있었다. 아찔한 롤러코스터는 없지만 낯익은 기구들이 언제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앉자마자 88열차 앞에 구름처럼 인파가 몰린 30년 전 사진을 내보였다. 그가 88열차를 들여온 사연 또한 롤러코스터처럼 흥미로웠다.

이 회장은 육사 11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이다. 이 회장은 “노 대통령과는 테니스 친구였는데 지금 병상에 누워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회장은 베트남전에 참전, 주월사령부 작전참모를 하고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1978년 대령을 마지막으로 군복을 벗었다. 대우실업을 거쳐 고려개발 사장을 하던 시절 지인이 어린이회관 놀이시설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현역 때 미국의 육군참모대학에 공부하러 갔어요. 겨울방학 때 디즈니랜드를 갔는데 꿈의 동산이었어요. 우리도 이렇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운명의 시작이었던 거죠.”

어린이대공원에서 놀이시설을 운영할 새로운 사업체를 찾는 입찰공고가 떴다. 1973년부터 운영하던 서울하이랜드의 계약기간이 끝난 시점이었다. 당시 놀이시설은 일본에서 쓰다 만 기계들로, 창경원에서 뜯어온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세계의 놀이시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360도 회전열차랑 새로운 시설을 들여오겠다는 계획과 함께 미니어처를 만들었어요. 일본 업체에 자문을 구했더니 지형 경사도랑 동선의 흐름이 좋다고 그래요. ‘군인 출신이 뭘 하겠어’ 생각했던 심사위원들도 모형으로 만든 포트폴리오를 보고 놀랐던가 봐요. 6개 업체가 응모를 했는데 마지막까지 올라가 큰 회사와 붙어서 결국 위탁운영권을 따냈어요.”

1983년, 놀이시설 사업체인 ‘동마’의 시작이었다. 1984년 어린이날 전에 개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업권은 따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예산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심사위원들이 묻기에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된다고 큰소리쳤는데 정작 은행에 갔더니 담보가 없다면서 한 푼도 못 빌려준다는 거예요.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되게 생긴 거죠.”

국내에선 놀이기구를 생산하는 업체가 없어 일본 회사와 협상까지 해놓고 대책 없이 시간만 흘렀다. “오사카 엑스포 시설을 맡았던 메이쇼(明星)사와 MOU(양해각서)까지 맺었는데 막막했어요. 폐기할 놀이시설을 철거할 돈도 없어 직접 작업복을 입고 나섰어요. 메이쇼의 오카모도 사장은 속이 탔겠죠. 당시 돈으로 25억원이 걸린 사업인데 포기하기는 아깝고 업자는 돈 한 푼 없다고 하니. 네 다섯 번 주말마다 한국을 오가면서 아무 말 없이 작업만 하는 저를 지켜보던 사장이 일본으로 초청을 했어요. 고급 식당에 가자는 것을 ‘바쁜데 그냥 도시락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고 했죠. 그런 저를 보고 믿을 만하다 생각했던지 계약서를 쓰자고 해요. 일본에선 외상 거래가 없었는데 신용 하나로 물건을 준 거죠. 계약금 조금 주고 매분기 갚아나가는 조건이었어요.”

해태제과를 찾아가서 “매점에서 해태제과 제품만 독점 판매할 테니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계약금을 마련했다. 88열차는 이렇게 배짱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이때 맨주먹의 이 회장과 함께했던 김광석(59) 전무와 서신하(76) 상무 등 4~5명의 직원이 지금까지 동마를 지키고 있다. 메이쇼에서 7개 기종을 들여오는 등 17개의 놀이시설을 새로 세우고 동마가 위탁경영을 맡은 어린이대공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빚을 금방 갚았겠다”고 물어보자 이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시설은 전부 기부체납하는 조건으로 16년8개월 위탁경영을 맡았는데 당시 88열차 요금이 380원이었어요. 서울시에서 요금까지 정해놓고 사람 많이 온다고 요금도 안 올려줬어요. 돈 많이 번다고 소문만 요란했지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왜 ‘88열차’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인터넷에서 88열차를 검색해보면 ‘88올림픽을 기념해서 이름을 붙였다더라’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이 회장의 설명이다. “88올림픽과는 관계가 없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 했어요. 한 직원이 기차가 회전하는 모습이 88자 같다고 해서 낸 것이 채택된 거죠.”

88열차는 북한 지도자 김일성과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이 회장이 ‘처음 공개하는 이야기’라면서 들려줬다. “신문 1면에 사진이 나오고 컬러TV 시대가 되면서 TV에 자주 등장하고 88열차가 큰 화제였죠.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북한의 김일성이 메이쇼의 오카모도 사장을 북한으로 초청했더랍니다. 오카모도 사장이 직접 해 준 이야기예요. 김일성이 ‘남조선의 88열차가 인기라는데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줄 테니 김일성 별장 옆에 설치해달라’고 하더래요. 남한 88열차의 규모를 묻기에 사실 600m도 안 되는데 1000m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랬더니 남한의 2배 규모인 2000m로 만들어달라고 하더래요.”

회전열차는 가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설계상 2000m가 나오기 힘들었다. 오카모도 사장은 고민 끝에 360도 회전을 두 번 하는 것으로 설계를 바꿔서 1985년 북한에 회전열차를 설치해줬다. 오카모도 사장이 1년 후 시설 점검을 하기 위해 다시 북한을 방문해서 보니 열차 앞에 일반 손님은 없고 웃통을 벗은 군인들만 줄지어 서 있더란다. “오카모도 사장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군인들 담력훈련용으로 쓰고 있다고 하더래요. 욕심대로 만들어는 놓았는데 주민들은 돈이 없으니 놀이시설에 올 수가 없었겠죠.”

88열차에 뒤이어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에도 360도 회전열차가 경쟁적으로 들어왔다. 이 회장은 추가 시설 투자를 하면서 계약을 연장해 20년을 운영했다. 어린이대공원에 이어 부산어린이대공원 놀이시설도 1988년부터 시작해 20년을 위탁운영했다. 임진각 평화랜드는 13년 전 경기도로부터 땅을 빌려 시작한 것. 시설을 늘리고 싶지만 판문점 옆이다 보니 제약이 많다. 처음 평화랜드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들고 싶었던 것은 국내에서 제일 높은 대관람차를 세우는 것이었다. “여기서 50m 높이만 올라가도 개성 송악산이 훤히 보입니다. 군관과 계속 협의했는데 난색을 표명했어요. 높이제한 때문에 결국 못했어요.”

이 회장은 서울대공원과 부산대공원에 자신이 만든 시설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놀이시설 문화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일본을 비롯해서 외국은 동네 곳곳에 작은 놀이시설이 많아요. 우리나라처럼 규모 경쟁만 하지 않아요. 작고 낡았다고 없애지도 않아요.”

이 회장은 놀이시설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취지에서 1984년 유원시설 협회를 만들었다. 삼성 에버랜드 등 현재 전국 종합유원시설 100여개가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이 회장은 9대 회장까지 맡아 협회를 이끌면서 국제협회에도 등록을 시켰다. 친목모임에서 출발한 유원시설협회는 현재 놀이기구 안전심사를 맡고 있다. 협회에서 위촉한 기술사의 심사를 통과해야 놀이기구를 운영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아직도 현역이다. 매일 평화랜드로 출근한다. 평일 찾는 사람이 없어 놀이기구가 멈춰 있어도 구석구석 녹슨 흔적이 눈에 띄면 호통이 떨어진다. 군 시절부터 해온 테니스는 요즘에도 매주 복식으로 내기 시합을 할 만큼 즐기고 있다. 이 회장은 “젊게 사는 비결은 매일 놀이기구를 타기 때문이다”라고 써달라고 말했다. “진짜 매일 타시느냐”고 묻자 “그래야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많이 타러 올 것 아니냐”고 말하고는 웃더니 덧붙였다. “이것도 꼭 써주세요. 놀이공원은 기다리는 것을 익히는 곳이에요. 빨리 타겠다고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어른들을 자주 봅니다. 제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기다리는 법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9월 30일 발매할 주간조선 2275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