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모자(母子) 실종사건의 피의자인 차남 정모씨가 인터넷에서 여우고개 살인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시청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경찰이 24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모방 범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씨는 올 5~7월 인터넷에서 살인과 실종 사건을 다룬 방송사 시사고발 프로그램 29편을 내려받아 시청했는데, 이 중 올 7월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여우고개의 비극 편`에서 다룬 여우고개 사건도 봤으며 여러 유사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구고개 사건은 지난 4월 중순 경기도 파주시 여우고개라 불리는 한 도로 인근 야산에서 사람의 다리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흙을 파낸 결과, 들짐승에 의해 왼쪽 다리가 훼손된 70대 남성의 시신이 나타났다. 피해자는 작년 말 서울에서 실종됐던 안모씨였다.

경찰의 수사 끝에 안씨는 장남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사실이 밝혀졌다. 안씨가 집에서 마약을 제조해 복용하던 장남을 경찰에 신고해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장남이 앙심을 품고 살인을 한 것이다.

◇범행 전 살인·실종 영상 시청…패륜 범죄에다 범행 방법도 닮아

범죄 전문가들은 인천 모자 실종사건과 여우고개 살인 사건이 여러 측면에서 닮아 모방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먼저 부친과 모친·형 등 친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패륜 범죄인 동시에 증거를 없애려고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안씨의 장남은 부친의 시신에 불을 저지르고 암매장하려 했고, 정씨는 형의 시신을 3등분으로 토막냈다.

범행 장소도 각각 부친과 모친 집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시신을 가방에 담아 차량을 이용해 평소 자신들이 잘 알던 지역의 야산에 버린 점도 흡사하다. 안씨의 장남은 처가가 있는 경기도 파주의 한 야산에, 평소 강원랜드를 오가던 정씨는 지리에 익숙한 강원도 정선 국도변과 외가가 있는 경북 울진의 야산에 각각 시신을 버렸다.

두 사건의 피의자들이 모두 범행 전 살인이나 실종 관련 영화·책·방송 프로그램 등을 봤다는 점도 비슷하다.

안씨의 장남은 영화 ‘나는 살인범이다’를 봤고, 정씨는 여우고개 살인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를 포함해 모두 29편의 살인과 실종사건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범죄 입증 증거 없어 난항 겪었지만 시신이 결정적 증거

두 사건 모두 정황 증거만 있고 존속살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가 난항을 겪었다. 안씨의 장남은 부친이 실종될 당시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끌고 부친이 사는 아파트의 엘레베이터를 탔다는 사실이 포착됐다. 하지만 이는 그의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로 인정받지 못해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 입건할 수 없었다.

정씨는 실종된 형의 차량을 타고 시신이 발견된 경북 울진과 강원도 정선 등에 다녀온 사실이 확인돼 긴급체포 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시신이 발견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