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끝난 2013 WTBA(세계볼링협회) 세계선수권 결과는 놀랄 만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4개, 동메달 5개를 따내며 볼링 종주국이자 홈팀 미국(금5·은4·동4)을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종합 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

한국 대표팀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선수권의 꽃'이라 불리는 마스터스였다. 개인전·2인조·3인조·5인조의 성적을 합산해 선발한 상위 24명이 토너먼트로 정상을 겨루는 이 종목에서 한국은 남녀 모두 결승에 올랐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5인조 금메달리스트 손연희(29·용인시청)가 먼저 대표팀 동료 김문정(곡성군청)을 211대193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를 지켜보던 남자 국가대표 조영선(27·광주시체육회)의 부담은 커져만 갔다. "다시 못 올 기회잖아요. 아내가 먼저 마스터스 금메달을 따냈으니 저만 우승하면 유례가 없는 부부 동반 우승이잖아요. 일내겠다 싶어 심장이 막 쿵쾅거리더라고요."

조영선과 손연희는 올해 1월 웨딩마치를 울린 부부 볼링 국가대표다.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을 시간이지만 그들은 선수촌 생활로 올해 집에서 잔 날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WTBA 세계볼링선수권 남녀 마스터스에서 나란히 우승한 부부 볼링국가대표 조영선(27·왼쪽)과 손연희(29)가 4일 서울 태릉선수촌 볼링장에서 볼링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1월 결혼한 조영선-손연희 부부는“힘들 때마다 서로의 존재가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영선의 결승 상대는 크리스 반스(43). 그는 메이저 3승을 포함해 PBA(미프로볼링) 투어에서 15승을 올린 간판스타다. "연습하면서 비로소 긴장을 떨칠 수 있었어요. 반스는 작년 9월 태국 오픈 결승에서 꺾었던 상대라 자신감도 생겼고요." 초반부터 연속 스트라이크로 기선을 잡아나간 조영선은 반스를 254대195로 여유 있게 물리쳤다. 동반 금메달을 따낸 뒤 부부는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4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조영선·손연희 부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대회가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손연희는 3인조·5인조·마스터스 정상에 오르며 3관왕의 영광까지 안았다. 조영선도 마스터스 금메달을 포함해 금 1, 은 2, 동 1개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최강 볼링 부부'의 인연은 국가대표에 함께 뽑힌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친한 누나·동생 사이로 지내다가 2011년 8월부터 연인 사이가 됐다. 손연희는 "작년에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고 나니 (조)영선이를 보기가 너무 어려워지더라"며 "올해 선발전에서 그런 점이 큰 동기부여가 돼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고 했다. 조영선은 "함께 다시 국가대표가 된 해에 결혼도 하고, 세계선수권 동반 우승도 했으니 더 바랄 게 없다"며 웃었다.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조영선·손연희 부부는 둘 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결혼 생활의 노하우라고 했다. 아직 자녀 계획은 없다. 조영선은 "아내의 볼링이 잘되고 있어 아이 계획은 당분간 뒤로 미뤘다"고 했다.

별도 휴가 없이 곧바로 다음 달 초 동아시아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부부는 서로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볼링이란 게 안 될 땐 정말 한없이 어려운 스포츠거든요. 그런데 운동할 때나 경기할 때나 어려울 때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남편이 있어요. 그게 참 든든해요." "전 성격이 급한 편인데 그때마다 아내가 침착하게 잡아줍니다. 결혼을 정말 잘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