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과 논리를 중시하는 이성이 학자의 덕목이라면 예술가에게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초월과 영성에 대한 갈급이 더해져야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 완성된다. 이성과 감성을 갖추고 신성에 홀린 인간상에 근접한 사람으로 우리는 미르체아 엘리아데를 꼽을 수 있다.
1907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동방정교의 신비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는 21세에 이미 글 250여 편을 발표한 천재로 대접받았다. 그를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던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비평가 에밀 시오랑은 그가 당시 젊은이의 우상, 영적 지도자, 실존주의자였다고 회고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읽은 인도철학에 매료돼 1928년, 스물한 살에 훌쩍 인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3년간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하며, 인도에서 겪은 사랑을 소재로 삼은 소설 '마야트레이'를 발표했다. 1940년 학자와 소설가로서 성공과 안락이 보장된 루마니아를 떠나 영국과 포르투갈에서 대사관 소속 문정관으로 재직한 엘리아데는, 1945년 전쟁 직후 어수선한 파리에 둥지를 틀었다. 인류학자 조르주 뒤메질의 후원으로 요가와 인도철학을 강의한 그는 점차 관심을 넓혀가며 칼 융을 비롯한 당대 서구 지식인과 폭넓게 교류했다.
모국어로 쓴 소설이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비교종교학, 종교사에 집중됐다. 집필과 더불어 유럽을 떠돌며 강연을 하던 그가 최종적으로 닻을 내린 곳은 미국의 시카고 대학이다. 그 후 사망할 때까지 미국에서 그가 주도한 '세계 종교사'는 20세기 인문학의 총체라 해도 손색없는 역저이다. 흔히 인문학을 지칭하는 문·사·철의 세 기둥을 세우고 마지막에 얹는 대들보가 종교학임을 입증한 생생한 사례다.
어림잡아 50여권의 저서를 남긴 엘리아데는 영적 체험을 포함한 광범위한 종교현상을 철학, 사학, 혹은 심리학으로 환원하지 않고 종교학이라는 고유한 영역에서 해석했다는 점에서 현대 종교학을 정초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신성함과 그 현현, 역의 합일, 영원회귀 등과 같은 개념을 동원하여 동서고금의 사례를 관통하는 박식은 단연 돋보이지만 방법론의 부실이 지적되곤 했다. 그는 "성속(聖俗)을 막론하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종교인이며 신화 속에 상징적으로 표현된 창조, 파괴, 재생의 테마는 지금도 세속의 문화와 제도로 위장된 채 여전히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에밀 시오랑은 그를 '종교 없는 신앙인'이라 했지만, 엘리아데가 보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종교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한다. 공산주의마저도 낙원 도래의 신화가 정밀하게 재현된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에서 그의 관점이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특히 태초의 시간과 공간이 반복되는 영역으로 문학을 자주 인용한 덕분에 그의 저서는 문학 연구에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원래 모든 예술은 성스러웠다"는 그의 주장은 종교와 예술이 가시적 상징을 통해 초월적인 것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짚은 것이다. 상징 연구는 신화, 전설, 민속에 그치지 않고 보들레르, 괴테, 발자크, 고갱, 블랑쿠시, 샤갈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확장된 통찰력을 과시하여 통합적 인문학의 전범을 이룩했다. 예컨대 그의 일기에 언급된 철학과 예술, 심지어 평범한 일상사에 대한 언급은 이전의 특정 분야가 파악하지 못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 다만 그가 이룬 종교학의 업적이 너무 찬란한 나머지 그의 예술적 글을 그늘지게 했다. 학술서는 영어와 불어로 쓴 반면 일기와 소설은 루마니아어로 쓴 탓이지만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정치적 행적이 그의 생애에 오점으로 남았다. 강한 조국, 신성한 민족을 내세우고 나치즘의 반유대주의에 동조한 이력은 그가 성취한 학문적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했다. 훗날 그는 "파시즘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필연코 파국에 이르는 현대판 신화"라고 진단했지만 젊은 시절의 실족은 돌이키기 어려웠다.
[엘리아데, 더 알고 싶다면]
神話와 관련된 책으로 시작하면 전설·예술과 엮인 재미가 한움큼
엘리아데의 책을 읽으면 종교학뿐 아니라 신화, 전설, 민속, 문학, 예술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재미를 덤으로 챙길 수 있다. 대표적 저서로 '세계 종교사상사'를 꼽을 수 있지만, 분량이 부담스럽다면 '종교사 개론', '종교형태론'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일반 독자에게는 '영원회귀의 신화', '성과 속', '상징, 신성, 예술',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신화, 꿈, 신비', '미로의 시련' 등이 흥미로울 것이다.
번역체가 싫은 사람은 정진홍의 ‘M 엘리아데 종교와 신화’를 필두로 그의 글을 찾아 읽는다면, 자상하고 감동적인 해설과 문체에 이끌려 자연스레 다른 책으로 인도될 것이다. 더글라스 앨런의 ‘엘리아데의 신화와 종교’는 엘리아데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전제된 비판적 독서에 도움이 되지만 일반 독자에게 다소 버거울 수 있다. 소설로 ‘백 년의 시간’, ‘벵갈의 밤’ 등이 번역되었다.